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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아쇠 수지

2020-06-03

문화 문화놀이터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방아쇠 수지
'글. 한지황'

    “요즘 손가락은 좀 어떠세요?” 손가락? 아! 손가락!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네. “많이 좋아졌어요.” 발목을 접지른 후 찾아간 한의원 의사의 말에 손가락이 불편해서 한두 달 치료를 받았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2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오른손 중지가 뻑뻑했다. 굽혔다 폈다 하는데 통증이 느껴졌다. 증상이 심해지자 류마티스를 앓는 친구가 생각났고 나도 혹시? 하며 겁이 덜컥 났다. 신경외과를 찾아갔다. 증상을 들어본 의사는 다행히도 류마티스는 아니라며 ‘방아쇠 수지’라는 병명과 함께 설명을 해주었다.
    “방아쇠 수지란 손가락을 굽히는 힘줄이 반복적으로 자극되어 힘줄이 지나가는 통로가 좁아지고 통증이 유발되는 질환입니다. 손가락에 움직임이 제한이 되다가 딸깍 소리와 함께 굽혀지는데 이 모습이 방아쇠를 당길 때와 비슷하다 하여 방아쇠수지라 부르지요. 손을 무리하게 사용하는 경우 발병하기 쉽고 특히 손잡이가 달린 자루, 운전대 등 장시간 손을 움켜쥐는 작업이나 배드민턴, 테니스와 같은 운동으로 인해 발병하기 쉽지요.”
    두터워진 힘줄을 잘라내기만 하면 되므로 수술은 간단하지만 염증 때문에 하루 입원이 불가피하다며 심하지 않다면 서둘러서 수술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일단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기로 했다. 한의사는 일 년 정도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만 나을 수 있다고 했지만 한두 달 다니다가 지겨워서 그만둔 게 어느새 2년 전이었다.



    원인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며 가장 손을 많이 쓰는 행동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다 컸으니 가사 일은 한결 줄어들었고 부지런히 쓸고 닦고 하는 편도 아니었으니 집안일은 제외했다. 그 다음은 피아노. 일주일에 한 번씩 렛슨을 받으니 연습 시간이 꽤 되는데 신기하게 피아노를 치는 동안은 손가락이 아프지 않았다. 손을 구부렸다 필 때만 아픈 것이지 피아노는 계속 편 상태에서 치니까 해당사항이 아니었다. 그림을 그릴 때 붓을 잡는 행위도 고려되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 뿐이므로 그다지 영향을 주지 않을 것 같았다.
    배드민턴이나 골프를 하지 않으니 운동 때문에 오는 것도 아니요 도대체 내게 ‘방아쇠 수지’라는 병이 왜 생긴 것이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증상은 심해졌다. 심할 때는 쉽게 손가락을 펼 수 없어서 고통스럽게 펼쳐야만 했다. 왼손마저도 같은 증상이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
    이제는 정말 수술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자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수술이라곤 해본 적이 없기에 간단한 수술이라 할지라도 선뜻 내키지는 않았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혹시 수술 외의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어느 외과의사가 동영상으로 ‘방아쇠 수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을 보는 순간 불현 듯이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원인 즉 움켜쥐는 행동 중 간과한 것이 있었던 것이다. 헬스 기구였다. 헬스장을 다닌 지 15년이 넘었지만 웨이트 트레이닝은 뒷전이었다가 5년 전부터 매일 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수록 근육 손실이 심각하기 때문에 근육운동이 중요하다는 매스컴의 영향이었다. 헬스기구들의 손잡이를 움켜잡고 중량을 높여가며 잡아당기다보니 ‘방아쇠 수지’ 증상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재미를 붙인 상태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그만두자니 아쉬웠지만 점점 심해지는 손가락 통증을 없애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렇게 헬스기구와 이별을 한 지 1년, 나는 발목치료를 받으러 오랜만에 찾아간 한의원에서 한의사가 내 손에 대해 물어보기 전까지 ‘방아쇠 수지’에 대해 잊고 있었다. 나를 보자 그 병을 떠올린 의사가 아니었다면 내 손의 상태가 좋아졌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그 병이 생기기 전의 상태만큼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의식을 하지 못할 정도로 호전된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었다.
    움켜쥐는 행동을 했을 때 파생된 병이 움켜쥐는 행동을 하지 않으니 사라졌다? 그 순간 이 자그마한 손으로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움켜쥐고 살아왔을까하는 깨달음이 왔다. 헬스기구를 비롯해 아직도 움켜쥔 것들을 내려놓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움켜쥔 것이 많을수록 내 삶은 복잡하고 그만큼 스트레스의 강도도 심할 것이다.
    이시키와 리에는 각자의 방식으로 홀가분한 삶을 살아가는 여섯 명의 라이프 스토리와 철학을 엮어 <홀가분한 삶>을 출간했다. 커리우먼으로 활약하다 홀연 고향으로 돌아가 바텐더가 된 수필가, 워커홀릭으로 살다가 호젓한 삶을 되찾은 편집자, 직장을 나와 작은 식당을 차린 부부, 취미로 시작한 재봉틀로 자기만의 독특한 가게를 꾸려가는 수공예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여행을 즐기며 사는 요리연구가 겸 사회 활동가, 여든이 넘어서도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인생을 즐기는 부부 등의 사연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꾸준히 찾아내고, 과감한 실천을 통해 삶의 질을 바꾼 인생들을 보여주면서 넘치는 물건을 정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복잡한 인간관계, 나쁜 생활 습관, 타인의 시선, 주거 공간에 대한 집착과 욕심을 걷어냈을 때 진정으로 홀가분해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입과 배의 욕망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매양 절약하고 검소함을 더함이 또한 복을 아끼고 수명을 늘리는 방법이다(口腹之欲, 何窮之有? 每加節儉, 亦是惜福延壽之道)."라고 소동파가 말했듯이 움켜쥐는 대신 활짝 펴서 내려놓으며 살라고 ‘방아쇠 수지’가 나에게 찾아왔음이 틀림없다. 완치되지 않았음은 내려놓을 것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