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하다’ 진하지 않은 육수와 감칠 맛나게 동치미가 적당히 어우러진 맛이다. 오히려 동치미 맛이 좀 더 난다. 처음 맛은 밍밍해서 다소 실망스럽지만 이내 몇 숟가락 오가면 여운이 남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흔한 새콤달콤한 냉면 맛에 익숙한 사람은 ‘이게 무슨 냉면이냐’고 타박할 수도 있지만 과하지 않게 짜지도 않고 맵지도 않은 평양냉면의 참맛인 담백미(淡白味)의 매력에 빠져들면 헤어나기 힘들 듯싶다.
평양냉면은 메밀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거칠고, 쉽게 끊어지는 굵은 면발이 특징이다. 평안도 지방에서는 추운 겨울 따뜻한 온돌 아래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동치미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었는데, 맵거나 짜지 않고 담백한 맛이 자랑이다.
평양냉면이 지닌 전통의 깊은 맛에 푹 빠져 대중화를 선언한 경성갈비 평양냉면 김찬식(36) 대표는 “평양냉면은 가벼운 음식이 아니다. 새콤달콤한 맛에 익숙한 대중적 냉면의 맛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먹어보면 볼수록 깊은 매력을 지닌 참 좋은 음식이다.”며“전통의 맛을 지닌 평양냉면이 클래식이라면 내가 추구하는 대중성 있는 평양냉면은 가요다. 하지만 유행만 따르는 가요가 아니라 작픔성 있는 가요를 만드는 마음으로 진정한 평양냉면의 맛을 대중에게 알리고 싶다.”라고 말한다.
직접 메밀 면을 뽑아 매일 삶아낸다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선생은 한겨울 황해도에서 맛본 냉면 맛을 잊지 못해 다음과 같은 시를 읊조렸다.
“시월 들어 서관(西關)에 한 자 되게 눈 쌓이면 문에 이중으로 휘장을 치고 폭신한 담요를 바닥에 깔아 손님을 잡아두고는 갓 모양의 쟁개비에 노루고기 저며 굽고, 길게 뽑은 냉면에 배추절임을 곁들이네.”
시를 읽다보면 냉면이 여름 음식이라는 고정관념을 잊게 된다. 냉면을 맛볼 올 겨울이 벌써 기다려진다. ‘경성갈비 평양냉면’에서 갈비나 여타 고기를 먹은 후 반드시 먹어야 할 음식이 있다. 바로 평양냉면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에 평양냉면은 꼭 맛을 봐야 한다. 고기도 고기지만 평양냉면을 만드는 젊은 주인장의 음식 철학과 열정이 가장 많이 녹아 들어간 음식이기 때문이다. 분명 고깃집이지만 평양냉면은 주인장의 자존심을 건 음식이다. 처음 냉면 육수 한 숟가락을 입 안에 넣는 순간 그걸 직감했다.
김 대표가 처음 평양냉면을 맛본 것은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대 젊은 나이로 용암동에서 황제갈비 간판을 걸고 식당을 오픈했다. 바로 옆 식당이 ‘한우마당’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평양냉면을 팔았다. 한우마당 주인은 우리나라에서 평양냉면 70년 전통으로 유명한 ‘우래옥’ 출신으로 청주에 내려와 음식점을 차리게 됐다.
그때 처음 평양냉면을 맛을 본 김 대표는 ‘정말 맛이 없다’였다. 이렇게 만든 음식을 어떻게 손님에게 팔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미 새콤달콤한 냉면 맛에 익숙한 김대표에게 밍밍한 평양냉면 고유의 맛은 실망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후, 열두 살 띠 동갑으로 위였던 한우마당 주인과 형님, 동생하면서 가깝게 지내게 됐다.
우래옥에서 평양냉면을 정통으로 배운 한우마당 형님에게서 평양냉면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게 되었다.
평양냉면을 브랜드화하기로 마음먹은 김 대표는 직원들과 함께 서울 ‘우래옥’을 시작으로 전국 유명 냉면집을 찾아다니며 스스로 평양냉면의 진정한 맛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역시 맛이 없다는 직원들의 이구동성으로 반대에도 불구하고 진정성 있는 평양냉면에 빠져들었다.
드디어 율량동에 ‘경성갈비 평양냉면’ 간판을 걸고 평양냉면의 ‘담백미’를 선뵈었다. 예상대로 대중들의 입맛은 쓴 소리로 일관됐다. ‘진짜다.’ ‘가짜다.’ ‘메밀이다.’ ‘메밀이 아니다.’ 등 너무도 아픈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진심은 통하는 법. 진정성 있는 음식과 정직한 입맛에 한 두 사람씩 맛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이제 김 대표는 평양냉면의 예찬론자가 되었다. 평양 지방의 향토음식인 평양냉면의 전통을 고수하면서 대중성 있는 입맛을 찾는데 주력했다. 특히, 메밀 함량 70%의 면도 충분히 메밀 향을 내주고 면발도 메밀 면의 느낌을 충분히 살렸다. 유난히 쫄깃한 면발 좋아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아쉬울 수 있겠다. 하지만 평양냉면은 쫄깃한 맛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다. 직접 메밀을 반죽해서 나온 면발을 씹고 매일 새롭게 끓여내는 국물을 마실수록 우리나라 최고의 평양냉면 재현에 목숨을 건 이 집 주인장의 열정이 느껴졌다.
김 대표는 “냉면의 생명은 무엇보다도 면과 육수다. 면은 최상의 맛을 위해서 우리는 메밀과 고구마 전분을 6:4 비율로 매일 반죽해서 사용한다. 또한 육수는 나주곰탕과 동치미를 7:3로 매일 새로운 육수를 곁들여 바로 뽑아 삶아내는 것이 ‘평양냉면’의 비결이다 특히 차가운 냉면과 곁들이는 숯불에 갓 구워낸 돼지갈비는 멋진 조화를 이룬다.”라고 말한다.
달콤한 갈비와 담백한 평양냉면이 만났다
‘경성갈비 평양냉면’의 고기 맛 비결은 불판에서부터 시작된다. 국내산 참숯은 기본이다. 고기가 쉽게 타지 않아 어떤 고기를 구워도 육즙이 살아있고 맛이 좋다. 이 또한 황제갈비에서 검증되어 청주시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양념 돼지갈비는 뼈대가 갈비와 한 몸으로 이어져 있는 진짜 갈다. 일반 갈비보다 조금 더 두툼하고 양념을 잘 재워놓아 간이 쏙 베어 달콤함이 느껴지고 부드럽다. 숙성시간이 긴 탓에 양념이 고기 속 깊은 곳까지 배어 씹을수록 깊고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나주곰탕(6천원)은 매일 한우로 정성껏 끓여낸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다. 역시 최상급의 사골 재료를 쓰지만 또 하나의 숨겨진 비밀이 있다면 재탕한 국물에 있다. 재탕이라 하여 완수 버리고 다시 끓이는 것이 아니라 완수에서 묻어 나오는 누린내와 기름기를 제거하고 한 번 더 끓여 내는 것이다. 국물이 깔끔하면서도 깊은 맛이 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경성갈비 평양냉면’의 메뉴는 경성갈비 250g 1만1000원, 경성목살 250g 1만1000원, 한우육회 2만5000원, 한우수육 1만원, 나주곰탕 6천원. 평양물냉면, 6천원, 평양비빔냉면 6천원이다.
최병관 본부장은 “재료가 좋아야 고기 맛도 좋고 국물 맛도 좋은 법이다. 손님들이 그릇을 모두 비우고 가는 것을 볼 때마다 식재료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된다.”며“식당의 최우선 조건은 맛이지만, 청결 및 서비스도 한층 업그레이드되어 손님의 불편한 점을 최소화하고 식사를 하는 순간만큼은 가장 편안한 자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름이 지나고 서늘한 가을의 문턱에서 뜨끈한 국물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시기이지만, 진정한 미식가들은 찬 계절에 먹는 냉면을 찾아 ‘경성갈비 평양냉면’을 찾고 있다.
-경성갈비 평양냉면(청원구 주성로 89) / 043-241-8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