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릇노릇 삼겹살이 철판에서 익어간다. 찬찬히 쳐다보고 있자니 익어가는 모양이 마치 깨소금 볶는 것과 닮아있다. 여태껏 먹어본 삼겹살은 ‘맛있다’였다면 이참에 ‘삼겹살은 고소하다’라고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아는 것만큼 맛있다’라는 맛의 진리를 터득하기에 시간이 꽤 필요했던 셈이다. 돼지고기가 제일 맛있을 때가 언제쯤인지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됐다. 또한 돼지고기의 진정한 맛은 ‘고소함’이라는 것까지 말이다.
우선 돼지고기가 가장 맛있을 때는 추위가 오기 전인 가을철이라는 것이다. 그 까닭은 추위를 견디기 위해 돼지는 살을 찌워 지방층을 두텁게 한다. 돼지고기를 구울 때, 그 지방층을 태우기 때문에 고소한 맛이 난다고 한다. 반면, 돼지고기 소비가 많은 여름철에는 지방층이 얇아서 구워도 가을철에 비해 고소한 맛이 덜하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고기를 너무도 좋아했고 지금도 거르지 않고 매일 고기를 먹고 있다. 고기가 너무 좋아 정육점을 차렸고 그것도 양이 차질 않아 식당까지 운영하게 됐다. 무엇보다 고기 본연의 맛을 최상으로 제공하겠다는 일념으로 고기에 인생을 건 사람이 있다. 바로 싱싱생고기 정육점(가경동 1965) 황지환 대표다.
그는 “어려서부터 고기 먹는 게 그냥 좋았습니다. 이제는 고기에 대한 애착을 넘어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고기가 가진 본연의 맛을 느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습니다. 오로지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어제 오신 손님에게 오늘도 같은 고기의 맛을 제공하고 싶어서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깐깐하게 직접 손으로 고기를 손질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가경동에서 가장 맛있기로 소문난 삼겹살집
기계로 자른 고기와 손으로 자른 고기의 맛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다. 황 대표는 “언젠가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기계로 간 마늘과 손으로 빻은 마늘의 맛이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것을 보고 나서 고기를 기계로 잘라서 구어 먹어보고 칼을 써서 손으로 잘라서 구워 먹어보니 정말로 맛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줄곧 칼로 썰어서 팔고 있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어 “가경동에서는 아마도 우리 집 고기가 제일 맛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우선은 고기에서 자신합니다. 오직 암퇘지만을 쓰고 있습니다. 직접 고기를 보고 나서 품질이 떨어지면 반품입니다. 맛없는 고기를 손님에게 내놓을 수는 없는 거니까요. 고기를 먹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기를 많이 보면 볼수록 품질이 좋은 고기를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황 대표가 고기와 인연을 맺은 것은 13년 전으로 올라간다. 어려서부터 워낙 고기를 좋아해 친구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마침 육가공을 했던 친구가 선뜻 고기를 좋아하니 함께 일해보자고 권유했고 황 대표는 실컷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흔쾌히 응했다. 그곳에서 고기를 보는 법과 손질하는 법까지 배우게 됐다. 그렇게 3년 경험을 쌓고 분평동 원마루시장에서 정육점을 하다가 8년 전, 허허벌판이었던 지금의 자리에다 가게를 얻어 장사를 하게 됐다.
식당을 혼자서 하는 게 힘들 것 같아 레스토랑에서 주방장으로 잘 나가던 친동생 지만을 꾀여 주방을 맡게 했다. 사실 깐깐하기는 동생 지만 씨도 만만치 않다. 식재료를 구입하는데 있어서 신선하지 않으면 절대 쓰지 않는다. 하루 15~20테이블을 넘지 않도록 음식재료를 준비한다. 오는 손님들에게 정성과 맛을 제공하기 위한 지만 씨의 원칙이다. 신선한 재료의 양과 다음날 소비되는 양을 맞추고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양까지 조절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람이 많이 몰리는 금, 토요일에는 오신 손님들이 되돌아가기 십상이다. 불평불만을 하는 손님들에게 이해시키며 달래는 일을 도맡아 하는 황 대표는 이런 상황을 보고 우스갯소리로 ‘맛있는 집은 어디든 찾아가지만 주차할 데 없으면 되돌아가는 손님도 있다’고 했다.
본연의 돼지고기 맛을 느낄 수 있는 진짜 맛집
진정한 돼지고기의 맛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황 대표는 자신만의 명확한 답을 제시했다. “일단 숯이나 연탄불로 구운 돼지고기는 맛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돼지고기의 잡내를 숯이나 연탄불맛이 싹 잡아주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돼지고기의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대신에 본연의 돼지고기 맛을 보려면 철판에서 구워 먹어볼 것을 제안했다. 돼지고기의 겹을 살려낸 부위는 바로 지방층이다. 그 참맛은 바로 지방층을 태워 먹는 것이다. 그 맛은 바로 고소함이다. 또한 고기의 두께를 최소 5mm정도로 잘라 구웠을 때, 가장 식감이 좋아 돼지고기의 풍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너무 얇으면 너무 익어서 식감이 떨어지고 너무 두꺼우면 고기가 타서 맛이 덜하다. 여기에 철판은 열전도율이 빨라 고기가 빨리 익고 지방층을 적당히 코팅해주기 때문에 육즙이 살아 있어 본연의 돼지고기를 맛볼 수 있다.
황 대표가 수년간 고기를 먹어본 대가답게 정성스레 구운 삼겹살을 권한다. 오롯이 삼겹살 한 점만을 음미하라고 먹는 법을 재차 강요한다. 삼겹살 한 점을 입에 넣고 살짝 깨무니 정말 깨소금처럼 고소한 맛이 입 안 전체를 감돈다. 생전 처음 느껴본 맛으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여태껏 먹어본 삼겹살은 내 배만 채웠단 그냥 맛있는 고기였던 것이다.
이어, 마블링이 살아 있는 돼지목살을 한 점 집어 들어 맛을 봤다. 입에서 절로 감탄이 흘러나온다. 부드러운 그 자체였다. 돼지목살이 약간 퍽퍽한 맛이 있지만 전혀 그런 느낌이 없는 자연스러운 목넘김이 너무도 좋았다.
쉴 틈 없이 젓가락이 오고가는 동안 황 대표의 고기 예찬론과 그가 가지고 있는 원칙과 소신, 그리고 자부심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서비스로 나오는 돼지껍데기에 쏟은 황 대표의 정성과 수고로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흔히 말하는 콜라겐 덩어리인 돼지껍데기는 안쪽에 붙어있는 하얀 지방부위를 제거해야 진정한 돼지껍데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부위를 제거하는 데 무려 2~3시간 정도 걸리는 일이다. 이 또한 돼지껍데기의 본연의 맛을 손님에게 무료로 내주는 것이지만 허투루 할 수 없다는 황 대표만의 깐깐함과 진정성을 담고 있다. 긁어내기를 여러 번 반복해 얇아진 돼지껍데기를 보면서 그 정성에 감동했다. 입안에 넣고 씹는 순간 정말 부드럽고 쫄깃한 맛이었다. 돼지껍데기가 정말 맛있다.
싱싱생고기에서 맛보아야할 것은 볶음밥이다. 잘 익은 고기 몇 점과 김치, 콩나물을 섞어 직접 볶아먹으면 그 맛이 꿀맛이다. 거기에 6시간 푹 끓인 진한 육수로 만든 된장국은 구수하다 못해 옛날 할머니의 손맛이 난다. 또 다른 별미는 바로 소면이다. 싱싱생고기만의 비밀병기라 할 수 있다. 레스토랑 주방장 출신인 지만 씨만의 특급 레시피 야채육수를 6시간 이상을 우려낸다. 그 진한 육수로 만든 소면을 한번 먹어본 손님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해 대전, 천안 등지에서도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찾아올 정도다.
싱싱생고기 정육점은 저녁장사만 한다. 메뉴도 생삼겹살(200g 1만1000원), 생목살(200g 1만1000원) 두 종류만 있다.
싱싱생고기 정육점 043-295-8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