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기본 양념을 선사하며 한국의 밥상을 지켜온 장 담그기 문화는 K-푸드의 뿌리로 자리 잡아 왔다. 고대부터 우리 식생활의 뿌리가 되어 각 가정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전승되었고, 다양한 공동체의 역사와 전통을 보여준 생활습관이 이제 기다림 끝에 깊은 제맛을 품어낸 것처럼 세계에 전해질 일만 남았다.
01. 배에 올릴 옹기_옹기장 ⓒ국가유산청
“장(醬)이란 것은 으뜸[將]이란 뜻이니 백미 중의 으뜸이다. 인가의 장맛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채소와 맛있는 고기가 있다고 해도 반찬을 다스리기 어렵다. 또 촌야에 사는 사람은 고기를 구하기 쉽지 않지만, 각종 맛있는 장과 반찬이 있으면 걱정이 없다. 집안 어른이라면 먼저 장 담그는 데 유의하여 묵혀 두고 오래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옳은 도리이다.”
“장맛이 좋은 집에 복이 든다. 장은 모든 맛의 으뜸이요, 장맛이 좋지 않으면 비록 좋은 채소나 맛있는 고기가 있어도 좋은 요리가 될 수 없다. 가장 모름지기 장 담그기에 뜻을 두고 오래 묵혀 좋은 장을 얻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농서인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중
“장은 팔진(八鎭)의 주인”이라는 말을 언급하면서 “만일 장맛이 좋지 않으면 비록 진기하고 맛있는 반찬일지라도 능히 잘 소화시키지 못할 것이니 어찌 소중하지 않겠는가?”
- 조선 후기 저술된 가정 백과사전 『규합총서(閨閤叢書)』 중 명나라 도종의라는 사람이 편찬한 총서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한 『설부(說?)』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대두만을 쓰는데, 그중에 3~5년 묵은 것은 색이 제호와 같고 맛은 수이에 맞먹는다. 도은거(陶隱居)가 장에 대해서 논하면서 콩으로 만든 장은 오래 묵은 것이 낫다고 했으니, 그렇다면 우리나라 장이 마땅히 천하제일이 되는 것이다.”
-조선 후기 농촌경제 정책서 『임원경제지』 「옹희잡지」 중에서
02. 지역마다, 집안마다 각기 다른 장 제조법과 재료들, 03. 장의 주재료는 콩, 소금, 물이다. ⓒ국립무형유산원 04. 항아리에 담긴 고추장
하층민부터 왕실까지 누구나 누리는 한국 음식 문화의 정수 ‘장’ 장은 하층민부터 왕실 지존에 이르기까지 없어서는 안 될 기본적인 일상식이었다. 한국 음식은 국을 포함해 무침, 조림, 볶음 등 대부분 반찬의 조리를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의 발효식품을 활용해 만들다 보니 쓰이지 않는 곳이 없으며, 간은 ‘장’이 담당한다. 장은 콩을 주재료로 한 발효음식으로 한국 음식의 근간이 된다. 발효와 숙성 방식 그 기간과 용도에 따라 다양한 장이 존재하는데 대표적으로 된장, 간장, 고추장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두 발효식품인 간장, 된장, 고추장을 장류라고 부른다. 한국인의 장 담그기 문화는 한국 음식의 기본양념인 장을 만들고 관리, 이용하는 과정의 지식과 신념, 기술을 모두 포함한다.
한국식 장 담그기는 콩으로 만든 덩어리 메주를 이용해 만드는 방식이 주류이다. 콩 외에 다른 재료를 사용하는지, 콩을 삶은 후 다시 뭉쳐 메주를 만드는지, 다른 부재료를 혼합하는지 여부에 따라 지역마다 각양각색의 장 제조법과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분화하며 다양하게 발전해 왔다.
우리나라가 장을 담그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로 추정된다. 국가유산포털에 따르면 두장(豆醬)문화권에 속한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장을 만들어서 먹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조선
시대 왕실에서는 장을 따로 보관하는 장고(醬庫)를 두었으며, ‘장고마마’로 불리는 상궁이 직접 장을 담그고 관리하는 등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장은 식생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05. 나란히 걸린 메주
정성과 기다림의 미학으로 완성된 복합 발효 식품 장 담그기의 대표적인 특징은 두장 문화권에 속한 우리나라는 장의 핵심 재료인 ‘콩’으로, 흙으로 빚어서 불로 구워 만드는 장을 용기인 ‘옹기’에 담아 장기간 숙성시키는 것이다. 보통 장이라고 하면 액체 상태인 간장을 뜻하며, 넓은 의미로는 간장, 된장, 고추장을 주로 말한다.
한국적 발효음식의 발달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은 옹기 문화다. 옹기는 액체가 새는 것은 막으면서 공기는 선택적으로 투과시키는 구조로 되어 있다. 적절한 수준으로 온습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며, 특히 음식을 저장할 때 신선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어 선조들은 소금, 쌀, 곡식, 심지어 과일도 이 옹기에 넣어 저장했다.
발효음식인 장을 옹기에 넣을 때는 수십 년간 장을 보관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유해균의 유입을 막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새 항아리를 살 때는 항아리에 연기를 피웠는데 이는 연기가 새는지를 보기 위함과 장을 담그기 전 연기로 훈증해 살균처리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살균처리 후에는 돼지기름이나 황납으로 코팅해 이상 발효 같은 장의 상함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전을 기했다.
장을 담고 나면 항아리 바깥에 금줄을 매달았다. 통상 오른쪽으로 새끼를 꼬지만, 장에 달 금줄은 왼쪽으로 꼬았다. 여기에 귀신을 쫓아 준다는 붉은색의 고추, 숯, 한지쪽을 달았다. 버선본을 붙여두면 부정한 요소가 버선 속으로 들어가 없어진다고 여겼고, 버선발을 보고 벌레가 도망가라는 의미도 담았다. 빨간 벽사(闢邪) 색깔의 대추와 고추, 그리고 숯은 장독 안에도 넣었는데 실제로 살균이나 오염물질의 흡착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장을 담그는 이에게도 외부 오염물질이 유입될 가능성을 미리 방지하도록 함과 동시에 주술적인 요소가 축적 전승되어 민속 현상으로 굳어졌다.
가족과 세대로 이어져 이제 세계로 장을 담그고 관리하는 막대한 책임은 여성의 손에 맡겨졌다. 오랜 명문가의 종부는 그 집안의 음식 맛을 대표하는 장 담그기의 권위자였다. 시어머니 또는 집안 내 여성 어른의 방식과 경험을 다음 세대의 여성이 배우는 형태로 전승된다. 장을 담그는 방법은 가족과 세대로 이어지며 집안의 역사가 되고 한국의 전통이 되었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각 가정을 중심으로 현재도 자연스럽게 전승되고 있는 생활관습이자 문화라는 점에서 공동체 종목으로 지정해 특정 보유자나 단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장 담그기의 유네스코 등재를 앞두고 전통문화의 가치를 재조명받는 중요한 계기였지만, 이를 지키고 확산하는 일은 또 다른 과제다.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향유되는 중요한 국가유산이자 우리 국민, 이제 나아가 세계가 즐기고 지켜 나가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