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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길섶을 흐르는 물길 따라

2021-01-15

라이프가이드 여행


두물머리 정북토성 따라
삶의 길섶을 흐르는 물길 따라
'미호천 십리 제방길 / 팔결다리와 미호천 습지'

    미호천의 가을은 빛으로 온다. 소살거리는 강물에 물고기 비늘 같은 윤슬이 반짝이고 햇살에 감은 물억새의 머리채가 환하다. 미호천의 가을은 바람으로 온다. 그럴 때, 물가의 갈대들은 제 몸에 숨겨둔 악기 소리를 낸다.
    살아간다는 건 제 몸을 흔드는 바람과 함께 악기처럼 우는 일. 괜찮다. 괜찮다. 다만 그리움을 내려놓는 순간, 가을은 가고 없으리라.
팔결에서 까치내까지<미호천 십리 제방길>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이지만 비교적 자연 상태의 미호천과 눈을 맞추며 걷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다. 그 길에서는 자주 멈춰서 풍경의 일부가 되어 보자. 봄날이면 버드나무 습지의 연둣빛이, 가을엔 바람에 일렁이는 물억새며 갈대숲의 물결이 꽃보다 아름답다. 행여 겨울날 설경 속에서게 된다면 풍경과 마음의 경계가 지워지며 길을 잃을지도 모르겠다.
    산이 순하게 내려앉은 곳을 따라 강이 흘렀다. 멀리서부터 산굽이를 돌아 나온 물길은 땅이 평평해지는 들판을 휘돌며 마을을 낳고, 물가에 피고 지는 무수한 생명들을 부려놓았다. 그렇게 우리네 삶의 길섶을 휘적시며 어제에서 오늘로 뒤척이며 흘러왔다. 사람들은 그 물길이 하도 애틋하고 아름다워 ‘미호천美湖川’이라 불렀다. 글자 그대로 ‘아름다운 호수를 이루면서 흐르는 내’라는 뜻이다.
 
미호천 일출

    충북 음성의 마이산에서 시작된 미호천 물길은 진천을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품을 넓힌다. 유순한 강물이 들을 어루만지며 흐르는 동안 사람들의 살림살이에도 윤기가 흘렀다. 굽이굽이 우리네 삶의 여정이 따라 흘렀던 물길 2백리. 그러나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천둥벌거숭이 시절 어머니처럼 다사롭던 강물의 기억은 이제 낡은 흑백필름 속에나 존재한다. 강물과 함께 아늑했던 유년의 추억, 삶의 길섶을 적시던 그 물길이 그립다면 미호천 십리 제방길을 따라 걷거나 자전거를 타보자.
    미호천 옛 팔결교에서 까치내까지 4km 정도의 제방길은 홀로 걷기에도, 자전거를 타기에도 호젓해서 좋다. 좀 더 넓게는 증평 보강천의 백로공원 인증센터에서 무심천교(미호천) 인증센터까지 약 26km의 자전거길이다. 그 풍경 속에 잠시 멈추어서면 듣게 될 것이다, 소살거리며 흐르는 강물의 이야기, 흔들리는 게 일생인 억새와 갈대들의 수런거림, 버드나무가 사랑하는 작은 새들의 날갯짓 소리를. 그리하여 산다는 건 제 몸을 흔드는 무수한 바람과 함께 흔들리며, 때로 악기처럼 우는 일이란 것을 알게 되리라.
천연기념물 미호종개의 고향 <팔결다리와 미호천 습지>
    사람은 다리를 건너고, 다리는 세월을 건넌다던가. 팔결들이 펼쳐진 청주시 외하동과 예전 청원군 오창면(지금의 청원구 오창읍)을 연결하기 위해 세운 팔결교. 지금의 팔결교는 왕복 6차로의 도로이지만 추억 속의 ‘팔결다리’는 2차로 정도의 폭을 가진 훨씬 소박한 모습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시멘트로 만들어진 옛 팔결다리는 새로 세운 다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남아있다. 걸어서 미호천을 건너려는 사람들에겐 아직도 제자리를 지키는 다리가 고맙고 반갑다.
 
(左)미호천 합수머리 부근 자전거도로  (右)미호천 팔결교

    팔결다리 밑은 1980년대만 해도 천렵과 물놀이 장소로 여름내 북적였다. 그때만 해도 한 번의 족대질에 스무 마리가 넘게 잡히던 물고기가 있었다. 팔결다리는 그 눈 맑은 생명들의 고향이었다. 지구상에 오직 한반도의 금강, 그 중에서도 미호천을 어머니의 강으로 삼아 번성했기에 이름도 ‘미호종개’라 붙여진 천연기념물 민물고기.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미호천에는 미호종개가 살지 않으니 아쉬운 일이다. 그들이 돌아오는 날은 언제일까.
    미호종개의 고향인 미호천의 습지는 전국의 생태 사진작가들에게 사랑받는 출사지이기도 하다. 강의 숨결처럼 피어오르는 안개 속으로 고라니가 뛰놀고, 철새들이 날개를 쉰다. 겨울이면 물가의 버드나무와 갈대숲에 하얗게 눈꽃이 피어나 꿈결인 듯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천연기념물 미호종개의 고향인 미호천 팔결다리.
‘팔결’은 어디서 왔을까 <미호천 팔결들>
    이 다리의 주변은 팔결들로 불리는 너른 평야지대다. 그런데 팔결다리나 팔결들의 ‘팔결’이란 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 내력은 이곳에 전해오는 이야기들이 들려준다. 첫 번째 이야기. 옛날 미호천에는 나라에서 관리하는 오근진이라는 나루가 있었는데, 고을에서는 뱃사공의 품삯 등 나룻배의 운영을 위해 세금을 걷어 충당하였다. 그 세금을 ‘팔결분’으로 하니 여기에서 ‘팔결’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이다. ‘결’단위의 세법은 수확량을 기준으로 경작지의 면적을 측정하고 이를 과세의 표준으로 삼는 조선시대 결부법結負法에 의한 것이다. 토지의 비옥함 정도에 따라 1결의 단위면적이 달라지는데 3등급으로 나눌 경우, 하등전 1결은 4천 평이 넘었고, 중등전 1결은 3천 평 남짓, 상등전 1결은 약 2천 평이었다. 조선 세종 때에 이르면 결부법은 다시 6등급으로 세분화된다.
 
01.미호천 일출     02. 갈대숲    03.철새

    그렇게 따져보면 8결의 면적은 대략 상등전일 경우 1만6천평, 하등전일 경우 3만 평이 넘는 농토였다. 결국 팔결의 세금을 충당하고도 남음이 있는 너른 들이 이곳에 있었기에 팔결들이라는 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팔결들을 적시는 미호천 오근나루의 물길을 따로 ‘팔결천’이라 부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모를 일이다. 왜 추억이라는 이름의 과거는 모두 온기를 품고 있는가. 대대로 우리네 삶의 길섶을 적시며 흘러온 미호천의 추억들도 그렇다. 소달구지가 발목쟁이 여울을 건너는 풍경. 이불 홑청을 들고 나와 눈처럼 하얗게 헹궈가던 빨래터. 겨울이면 얼어붙은 강과 다리를 건너던 사람들. 천둥벌거숭이들의 물놀이. 가마솥을 걸어놓고 눈 맑은 물고기들을 잡았던 다리 밑의 천렵. 은빛으로 반짝이던 고운 모래 백사장으로의 소풍. 흑백사진 속에 정지된 시간의 온기는 힘이 세다. 추억은 등불 같아서 때로 어두운 삶의 길목들을 환하게 비춰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