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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 땅도 온통 푸른 초록의 세상

2017-08-03

라이프가이드 여행


하늘도 땅도 온통 푸른 초록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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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봉산은 한계령을 사이에 두고 설악산과 마주하고 있는 산이다. 설악산이 화려한 산세로 이름을 날리는 반면, 점봉산은 수수하다. 만삭의 여인처럼 불룩하게 솟은 정상부가 그렇다. 그러나 이 산의 품은 한없이 깊고 깊다. 그 깊은 품에서 나무가 자라 숲이 되고, 다시 다른 나무에게 자리를 내주는 천이가 이뤄진다. 이 때문에 점봉산은 ‘활엽수가 이룬 극상의 원시림’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이 원시림 끝에 점봉산을 넘는 부드러운 고개가 있다. 곰배령이다. 이 고개에서 봄부터 여름까지 들꽃이 어울려 한바탕 축제를 벌인다. 극상의 원시림을 거닐어 만나는 꽃대궐, 여름날의 행복한 추억으로 부족함이 없다.




눈 많이 오는 점봉산 아래 오지마을 설피밭

    점봉산 품으로 드는 곳은 진동리 설피밭. 예전만 해도 설피밭은 이 땅 최고의 오지 가운데 하나였다. 양양 양수발전댐 상부댐이 조성되기 전에는 이곳에 마을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현리부터 비포장 길로 40리를 가야 닿을 수 있었던 마을이다. ‘설피밭’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겨울에 눈 많이 오기로 소문났다. 특히, 영동산간에 큰 눈이 내리는 2월 말에는 처마 밑까지 눈이 쌓일 정도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설피밭에 오지란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조침령을 넘어가는 길이 포장되면서 찾아오기가 쉬어졌다. 대신 ‘생태의 보고’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달았다. 산림청은 점봉산이 활엽수로 이루어진 극상의 원시림으로 인정하고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했다. 이 때문에 함부로 점봉산에 드나들 수가 없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한 자만이 강선골과 곰배령을 찾아갈 수 있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불편한 일이지만 이 숲을 지킬 수만 있다면, 그래서 후대에도 점봉산의 숲을 볼 수 있다면 그 정도 수고는 감수해야 한다.


활엽수 그늘 아래 나란히 놓인 계곡과 길

    산길은 설피밭 삼거리에서 시작된다. 왼쪽은 강선골, 오른쪽은 백두대간 단목령으로 간다. 왼쪽 강선골로 방향을 잡는다. 생태체험 프로그램 참가자에게는 노란조끼가 주어진다. 보호림 관리소를 지나면 곧장 활엽수의 깊은 터널 속으로 든다. 삼거리에서 강선골까지는 30분 거리.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길을 꼽으라면 당연히 첫손에 꼽힐 만큼 아름다운 길이다. 이 길은 차는 오갈 수 없다. 사람들만 다니는 널따란 길이 활엽수림 속으로 나 있다. 길은 초입부터 마을과 만날 때까지 계곡과 나란히 이어진다. 계곡은 제 아무리 깊은 가뭄이 들어도 마르는 법이 없다. 한여름 뙤약볕에서도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걸으면 서늘한 기운에 사로잡힌다. 강선마을까지는 오르막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완만하다.



    강선마을은 예전에는 제법 규모가 큰 화전민 마을이었다. 한때는 강선리라는 별도의 행정조직을 갖추기도 했다. 그러나 화전을 일구고, 산나물이나 약초로 연명하는 삶에 지친 이들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마을은 작아졌고, 지금은 몇 가구 남지 않았다. 그러나 상전벽해다. 강선마을이 산림유전자원보호림 안에 들어가면서 이제는 함부로 집을 지을 수도, 들어가 살 수도 없는 곳이 됐다. 오직 끝까지 그 마을을 지키며 살던 이들만 이 숲을 온전히 소유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하늘도 땅도 온통 푸른 초록의 세상

    강선마을을 지나면 길은 오솔길로 변한다. 강선마을에서 징검다리를 건너가면 이제 곰배령을 향해 가는 길이다. 숲은 점점 더 깊어진다. 계곡은 계속 동행을 자처하고 나선다. 가끔은 폭포가 되어 숲을 물소리로 물들인다. 완만한 오르막이 계곡을 따라 나 있다. 호흡이 가빠질 이유가 없을 만큼 부드러운 오르막이다. 활엽수 그늘 아래는 양치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고사리류의 식물들은 마음껏 잎을 펼치며 산비탈을 점령했다. 활엽수의 짙은 숲 그늘, 그리고 바닥을 차지한 양치식물로 인해 세상은 온통 초록바다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에 이 길을 걸으면 푸른 비에 젖는 착각이 들 정도로 숲이 깊다. 안개라도 자욱한 이른 아침나절에는 한결 더 신비롭다. 저 홀로 깊어지며 원시의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점봉산의 깊이가 느껴진다. 강선마을에서 30분. 한껏 수량이 줄어든 계곡을 건너는 곳에 ‘강선마을 입구 3.7km, 곰배령 1.3km’라 적힌 이정표가 있다. 이제 1.3km만 다리품을 팔면 곰배령 정상이라는 생각에 힘이 난다. 길은 조금씩 경사를 더한다. 그렇다고 가쁜 숨을 토할 만큼 가파르지는 않다. 그저, 오르막이구나라는 것을 느낄 정도다. 여전히 길 곁의 숲은 깊고, 먼 곳에서 들려오는 계곡물소리는 싱그럽다.




곰배령에 펼쳐진 야생화 꽃물결

    이정표에서 30분만 다리품을 팔면 하늘이 열린다. 곰배령에 다 온 것이다. 그 깊고 짙은 활엽수림이 사라지고 곰배령 정상은 드넓은 초지다. 뒤를 돌아보면 백두대간 너머로 웅장하게 치솟은 설악산 대청봉과 중청봉이 보인다. 곰배령을 향해 오르면 초원은 점점 넓어져 축구장만큼 커진다. 그 초원에 기대했던 것처럼 여름 들꽃이 만발했다. 미나리아재비, 쥐오줌풀, 눈개승마, 산수국, 매발톱, 전호 등 형형색색의 꽃들이 ‘꽃바다’를 이뤘다. 마치 식물도감을 펼쳐놓은 것처럼 화려한 꽃물결이 먼 길을 걸어온 탐방객을 반긴다. 곰배령의 들꽃은 여름이 깊어갈수록 더욱 더 만개할 것이다. 곰배령에서 시원한 산바람을 즐기며 휴식을 하고 나면 이제 하산할 시간. 하산은 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간다. 곰배령~강선마을을 제외한 다른 길은 모두 출입금지다. 강선마을로 내려가는 길도 편안하다. 가파른 오르막이 없었기에, 내려가는 길도 부드럽다. 곰배령만 벗어나면 다시 원시림의 짙은 숲 그늘이라 걷는 게 휴식처럼 느껴진다.
   


     가는 길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이용 동홍천IC로 나온다. 인제로 가는 44번 국도를 따라 가다 철정 삼거리에서 우회전 451번 지방도를 따라 가면 홍천~상남을 잇는 31번 국도와 만난다. 상남을 지나 현리에서 우회전, 418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조침령 터널 입구. 이곳에서 좌회전해서 4km 가면 설피밭이다. 강선마을~곰배령은 사전에 탐방신청을 하지 않으면 입장할 수 없다. 탐방신청은 산림청 인제국유림관리소(033-463-8166)과 진동리 민박협회에서 할 수 있다.

    기타정보
    설피밭~강선마을~곰배령은 초등학교 저학년도 갈 수 있을 만큼 길이 좋다. 곰배령 정상부를 제외하면 오르막이라 부를 수 없을 만큼 완만하다. 곰배령 정상이 부담스럽다면 강선마을까지만 갔다 와도 숲은 제대로 보게 된다. 단, 사전에 탐방예약을 해야 하고, 개장하는 요일과 시기 등의 변화가 많은 점에 유의한다. (총 소요시간 : 4시간(왕복) /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