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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시선의 오류

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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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시선의 오류
'글. 최명임'

    흠잡을 데가 없이 태깔이 좋다. 막 소세한 얼굴처럼 반질반질 윤이 난다. 구미가 당겨 눈으로 먼저 먹었다. 침이 그득 고인다. 너도나도 침을 삼키며 한 봉다리 사들고 돌아선다. 주인 남자는 신이 나서 사과를 봉지에 설렁설렁 집어넣으며 먼 데까지 들리라고 호객행위를 한다. 맛깔 난 홍옥 무더기 옆에는 허접하고 못생긴 사과를 뭉뚱그려 놓았다. 그중에는 머드러기도 있는데 때깔이 영 아니다. 홍옥의 반값에, 양은 두 배로, 맛은 한 수 위라고 해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 나 또한 번듯한 홍옥에 더 마음이 갔다.
    가을 추수가 끝난 텅 빈 과수원에 가면 쓰레기가 되어버린 과일들이 맥없이 매달려 있다. 따 먹어보면 꿀맛인데 작고 못생긴 이유로 사람의 손을 타지 못하였다. 날짐승의 맑은 눈이 맛에 반해 즐겨 찾는다. 사람에게 선택이 되었더라면 한층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을 텐데, 까치의 위장으로 들어갔으니 까치밖에 되지 못했다. 난전에 간신히 나온 사과는 그중에서도 나은 것이다. 어떤 사람이 거두어 갈지 궁금했다.





    보는 눈이 있으면 저를 거두어가겠거니 하고 태평스럽다. 사람들은 “너도 사과냐?” 하고 쏘아보다가 외면해버린다. 더구나 비교 대상이 곁에서 빛을 발하고 있으니 홍옥이 서푼이라면 채 한 푼의 값어치도 아니 보이는 것이다.
    주인의 관심 밖에서 애써 익었을 거다. 잘난 놈의 질시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견디며 묵묵히 속을 채웠겠다. 틈에 끼었으니 햇살도 반 토막이었을 터. 최선을 다한 뒤에 가을을 맞았다. 가장 깨끗하고 고상한 시선에 붙들리기를 기대하면서 여기까지 왔을 거다. 
    홍옥을 들고 만족해하며 돌아서는데 등이 굽은 할머니가 그 사과 무더기 앞에 섰다. 흔들리는 몸을 지팡이에 의지하고 두루 살폈다. 주인은 홍옥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우선순위인 듯 눈길을 주지 못했다. 구수한 사투리로 “얼매유?” 하고 값을 물으신다. 주인 대신 값을 알려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가 가난한 지갑을 여는 모습을 떠올렸다. 나의 시선도 딱 그만큼이었다.
    고운 색깔까지 다 먹으려고 정성 들여 닦는데 끈적끈적하고 미끌미끌한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광택제에 몇 날이나 절였는지 식초와 세제도 무용지물이다. 껍질을 깎았더니 밍밍하고 시금하다. 단맛이라고는 애초에 들지를 못하였다. 겉치레만 보고 혹한 내 실수였다. 사과 한 무더기에 그쳤다면 다행이련만, 세상을 보는 눈도 그것밖에 되지 못했다. 지금도 허무맹랑한 내 안목에 놀랄 때가 많지만 갓 서른일 때 이야기다.
    과일은 대체로 작고 못생긴 것이 더 달곰하다. 크고 잘생긴 것은 아주 맹탕일 때도 있고 맛이 있어도 싱거운 단맛이다. 그보다 요즘 와서 억지춘향이 되어버린 크고 때깔 고운 과일이나 채소는 거부감이 앞선다. 얼마나 많은 농약과 비료를 품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설탕비료까지 준다는 소문에 일단 의심을 하고 본다. 그 또한 내 시선의 맹랑함과 팔랑귀 탓일 거다. 





    정보에만 익숙한 젊은 눈은 난 척 할 뿐이지 연륜을 따를 수가 없다. 그 할머니가 허름한 차림새로 싸구려 과일 앞에 섰다는 이유로 가난한 지갑에 초점을 맞춘 그때 내 안목은 너무 어렸다. 
    할머니는 겉치레의 허무맹랑함을 잘 알고 계셨을 것이다. 필경 사람을 보는데도 놀라운 안목을 가지셨을 거다. 지위와 인격이 비례하지 않고 명예와 재물이 영원한 것도 아니며 더구나 그것으로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일은 인간에 대한 모독임을 알고 계셨을 것이다. 나의 어린 안목으로 왜 그런 것을 사느냐고 물어보았더라면 두고두고 내가 얼마나 부끄러웠으랴.
    이순이 코앞이다. 귀가 열리는 나이라니 안목의 깊이도 생겨야 할 시점이다. 사람들은 얼굴만 보아도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하는데 나는 여전히 짐작과 어긋날 때가 많다. 실은 보이는 것으로 판단을 해놓고 안목이라 함은 교만이다. 안목이 나이와 비례한다는 말도 허언인 듯하다. 
    못생겼으나 달곰한 사과가 좋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즐겁다. 명예와 재화도 가지고 속까지 채운 사람을 만나면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요원한 꿈일까.
    추측이 난무하는 세상에 못난 시선을 내리깔고 생각을 좀 해보아야겠다. 내 허리가 반으로 꺾일 즈음이면 세상을 보는데 일가견이 생기려나. 사과를 고르는데도 척 보면 알 수 있고 사람을 보는 데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요지경 속에서도 갈피를 잡는 고상한 안목을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