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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추천한다

2022-08-12

문화 문화놀이터


영욕(榮辱)의 세월을 품은 청와대를 걷다
그 사람이 추천한다
'이문열 소설가가 추천하는 우리 문화재'

    한국 문학사의 거목이자 살아 있는 전설인 소설가 이문열 작가.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새하곡」으로 등단한 그는 이후 능란하고 수려한 문체와 다양한 작품세계를 지닌 소설을 발표했다. 그가 74년 만에 국민에게 개방된 청와대를 찾았다. 굴곡진 현대사를 경험하여 이를 작품 속에 담아 온 그에게 청와대는 특별한 장소 중 하나이다. 




 
시대의 정신을 담는 작가
    “문화예술인 초청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가끔 청와대 영빈관을 방문했었어요. 모든 공간을 관람하는 것은 처음인데 한국의 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장소이기에 오늘이 무척 뜻깊고 감동스럽습니다.”
    우리 시대 최고의 소설가 이문열 작가는 1979년 32세의 나이로 등단한 이후, 한국 사회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을 작품 속에 담아냈다. 1984년 『영웅시대』에서는 사회주의자를 주인공으로 당시의 치열한 이념 갈등을 직시했고, 1987년 4·13 호헌 조치 이후 권력과 대중의 속성을 빗댄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발표 했다. 그 밖에도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젊은 날의 초상』을 비롯해 『시인』, 『오디세이아 서울』, 『황제를 위하여』 등 다수의 작품을 출간했다. 

 
1991년 전통 궁궐 건축 양식을 바탕으로 지어진 청와대 본관


    긴 시간 대중에게 사랑받은 그는 2000년 5월, 2,000만 권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중 평역서인 『삼국지』, 『수호지』를 제외한 순수 창작물의 경우 1,000만 권 이상 판매됐다. 한국인 4명 중 한 명이 그의 소설책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굴곡진 현대사를 온몸으로 경험하고 이를 작품 속에 녹여낸 이문열 작가는 “아픈 역사가 서린 청와대 일대는 내게 잊을 수 없는 장소이다”라며 청와대의 추억을 전했다.
    “저는 청와대가 처음 대통령 관저로 사용됐던 1948년에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에서 태어났어요. 긴 시간 머무른 적은 없었지만 젊었을 적에도, 글을 쓸 때도 지방에서 서울을 자주 오갔고, 서울에서 혼란스러웠던 당대를 경험하기도 했지요. 그중에서도 청와대는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 때 마다 등장하던 곳이에요. 대학교 입학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에 왔을 때 1·21사태가 발생했던 기억도 납니다. 작가가 된 후 초청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청와대를 몇 차례 방문 한 적도 있으니 저에게는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서려 있는 곳인 셈이지요.”
    문화유산은 일상에서 자주 접하고 보아야 그 감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청와대뿐 아니라 모든 문화재가 시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인위적인 프로그램으로 채워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후손 역시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그 유산 속에서 호흡하고 생활할 수 있을 테니까요. 

 
左) 영부인 집무실을 관람하고 있는 이문열 작가     右)국빈 만찬 등 공식행사장으로 이용된 영빈관


지금 모습을 간직하는 청와대를 바라며
    이문열 작가에게 익숙한 영빈관을 시작으로 1시간가량의 투어가 진행됐다. 대정원을 거쳐 본관에 들어가니 전통 궁궐 양식을 바탕으로 지어져 격조와 기품을 간직한 내부가 돋보인다. 외빈 접견실과 집무실, 영부인 집무실을 차례로 둘러본 그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아내가 창덕궁 부용정을 워낙 좋아해 그곳에 자주 가는 편이지만, 나는 사실 역사적인 장소에 방문하는 것을 즐기지 않아요. 치열하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수없이 반복해 온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괜스레 서글퍼지기 때문이지요.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조선시대 경복궁 후원이었던 청와대를 둘러보니 일제로부터 수난 당했던 아픈 역사가 생각납니다.” 

 
01. 이문열 작가는 “모든 문화재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해 후손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02. 청와대 본관 천장의 <천상열차분야지도>   03. <천상열차분야 지도>를 바라보고 있는 이문열 작가


    대통령 관저 뒷길로 향하니 시원한 물소리가 들려왔다. 나무가 우거진 녹지원에서 잠시 더위를 식히고 소통과 친교의 장소로 이용된 상춘재를 지나며 투어가 마무리됐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로 본관을 꼽은 이문열 작가는 청와대가 보다 많은 시민이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는 곳, 일상과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며 소감을 전했다.
    “문화유산은 일상에서 자주 접하고 봐야 그 감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청와대뿐 아니라 모든 문화재가 시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인위적인 프로그램으로 채워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후손 역시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그 유산 속에서 호흡하고 생활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문열 작가는 몇 해 전부터 그간 발표한 작품 중 일부를 추려 재출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칠순이 넘었지만 창작을 향한 갈망은 여전하다. 74년이란 긴 세월을 견디고 국민 품에 돌아온 청와대처럼, 그 역시 74년을 살아오며 변치 않는 창작의 열정으로 우리 곁에서 함께해 주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