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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나무야, 소나무야

2021-05-10

라이프가이드 라이프


충북의 숲과 나무?보은Ⅰ
나무야 나무야, 소나무야
'마을을 지키는 소나무 숲'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라는 노랫말을 마음속으로 되뇌며 돌아보는 보은의 소나무와 솔숲은 엄마처럼 푸근했고, 당당하게 아름다웠다. 소나무와 사람이 한 평생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가 살갑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소나무 숲이 마을을 보살펴준다고 생각하는 할머니는 오늘도 솔숲 옆 들판에서 가족들 밥상에 올릴 민들레를 캔다.  
속리산 가는 길, 소나무 고목 두 그루
    아기가 태어난 집에 부정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금줄을 쳤다. 금줄에 빠지지 않았던 것이 솔가지다. 사랑을 시작하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듯, 봄이 되면 소나무의 송화와 암꽃이 만나 솔방울을 만든다. 흐르는 세월 속에 마르고 갈라진 소나무 껍질처럼 사람도 늙는다. 세상을 떠나는 날, 소나무로 짠 관에 묻혀 도래솔(무덤가에 둘러 심은 소나무)의 품으로 돌아간다.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나 살며 죽어서도 소나무의 품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한 삶을 속리산 가는 길, 소나무 홍보 전시관에서 배운다.



    속리산으로 가는 길은 소나무 고목 두 그루를 보러 가는 길이기도 하다. 폐교된 초등학교 운동장 한쪽에 우두커니 서있는 300년 넘은 소나무 한 그루는 아마도 봄 햇살처럼 반짝이고 병아리처럼 재잘거리던 아이들을 추억할 것이다.  
    햇볕 가득한 옛 초등학교 운동장을 지키는 소나무 고목을 뒤로하고 속리산 법주사로 가는 길에 만난 소나무 고목은 정이품송이다. 600년을 훌쩍 넘긴 정이품송은 생긴 모습부터 당당하다. 지조와 절개를 품은 아름다움이다. 조선시대 세조 임금이 법주사로 가던 길, 가지가 늘어진 소나무 때문에 연(임금이 탄 가마)이 걸렸다. ‘소나무 가지에 연 걸린다.’고 말하자 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올려 길을 텄다. 이에 세조는 그 나무에 정2품의 품계를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내리 상가지역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걷기 시작했다. 속리산 법주사 ‘오리숲길’이 이곳에서 시작된다. ‘오리숲길’이라는 이름은 사내리 상가거리부터 법주사까지의 거리가 10리(약 4㎞km)의 반인 5리 정도가 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그 길에도 멋진 소나무들이 많다. 솔향기가 싱그럽다. 법주사 일주문을 지나 ‘자연관찰로’로 접어들었다.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 생강나무, 고로쇠나무, 참나무, 조릿대 등이 자라는 숲길을 걷는다. 숲길 옆 계곡 물소리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신록에 싸인 서원계곡, 물가의 고목 두 그루
    속세와 이별한다는 뜻의 속리산 품을 벗어나니, 다시 속세로 돌아가는 셈인데, 그 길에서 만난 속세의 아름다움은 바로 서원리를 흐르는 서원계곡의 봄 풍경이었다. 계곡에 이는 물결마다 햇볕이 은파금파 빛난다. 신록으로 물든 숲이 산을 이루고, 산줄기가 봄빛 가득한 물줄기를 품었다. 연둣빛 신록이 녹색으로 바뀌는 숲은 곧 짙은 녹색으로 뒤덮여 뜨거운 여름을 맞이할 차례다.
 
보은 서원리 소나무(정부인 소나무)

    서원계곡, 찬란한 봄의 한가운데에서 만난 소나무 고목 한 그루의 별명은 정이품송의 부인 나무라고 여기는 ‘정부인 소나무’다. 이 소나무의 공식 이름은 보은 서원리 소나무다. 수령이 정이품송과 비슷하다. 밑동부터 두 갈래로 자라 가지를 넓게 퍼뜨렸다. 푸근한 엄마 품 같다. 줄기 아래 누군가 큰 돌멩이 두 개를 쌓아놓았다. 얼핏 보는 눈길에 기도를 하는 어린 스님 모습이 비친다. 
    물길 따라 내려간다. 절벽에 뿌리내리고 자라는 작은 소나무의 아찔한 모습, 바람에 낭창거리는 가지를 물에 드리운 수양버들의 연둣빛 신록, 물비린내 흙냄새로 가득한 봄 개울, 어느 것 하나 눈길 가지 않는 곳 없으니, 봄은 이렇게 분주하다. 행운교 옆, 300년을 훌쩍 넘긴 느티나무 고목 한 그루가 봄의 대지 아래 뻗은 뿌리부터 안간힘으로 봄을 길어 올리나 보다. 늙은 가지 끝까지 푸른 새잎이 피어난다. 
마을을 지키는 소나무 숲
    흐르는 물을 따라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탄부면 임한리 솔밭이다. 마을 논밭 한가운데 자리 잡은 푸른 소나무 숲에서 생명력이 느껴진다. 솔숲으로 들어갔다. 한 그루 한 그루 세듯 소나무를 낱낱이 바라본다. 구불거리며 자란 소나무 줄기가 겹친 모습은 눈길 닿는 곳마다 다 다른 장면을 만들어 낸다. 한 순간도 허투루 넘길 여유가 없으니, 가슴이 벅차다. 간신히 솔숲을 나와 숲 밖에서 숲을 본다. 그때서야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숲 언저리 길가 파란 대문 옆에 피어난 라일락, 들판과 어울린 마을, 솔숲에 안긴 지붕 낮은 집 한 채, 임한리 솔숲은 그렇게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탄부면 임한리 솔밭

    들판에서 민들레를 캐는 할머니를 만났다. 민들레를 삶아 된장과 고추장으로 버무려 밥상에 올린다신다. 식구들 둘러앉은 할머니 집 밥상에 봄 향기가 가득하겠다. 할머니께서 마을 솔숲 자랑을 하신다. 당신 시집 올 때에도 솔숲은 있었다고 하신다. 옛날에는 소나무가 더 많았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가시는 할머니와 인사를 하고 다시 솔숲으로 돌아왔다. 
    오래 전부터 마을을 지키며 살고 있는 아저씨께 임한리 솔숲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솔숲은 250년에서 300년 정도 됐을 것이라고 한다. 언젠가 솔숲의 소나무 수령을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소나무들이 250년 정도 됐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아저씨 말에 따르면 오래 전에 임한리에 정착한 사람들이 소나무를 심고 가꾸었다. 예전에는 ‘임만리’라고도 불렀다. 소나무가 숲을 이룰 정도로 많아서 생긴 이름이다. 지금 이름인 ‘임한리’는 숲이 있어 편안한 마을이라신다. 수백 년 전부터 소나무 숲을 조성한 이유 중 하나가 풍수지리적으로 소나무 숲이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오래 전부터 마을에 전해진다. 
    임한리 솔숲에서 나오는 길에 솔숲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에 차를 세웠다. 솔숲이 없는 마을 들판을 생각하니 웬지 마음이 휑했다. 마을을 지켜준다는 솔숲은 그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헤아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