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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한 존재에 무한한 생명을 불어넣다

2021-04-09

문화 문화놀이터


시대를 잇는 삶
유한한 존재에 무한한 생명을 불어넣다
'박제 및 표본제작공 문화재수리기능자 이정우'

    기록하지 않은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대자연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에도 예외가 없다. 특히 천연기념물의 경우 개체 수가 많지 않아 잘 보존하는 게 우선이고, 확실하게 기록으로 남겨 보존하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다. 박제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박제는 천연기념물을 비롯한 각종 생명체를 박제해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물론 종의 보존을 위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등 여러가지 면에서 유의미한 일이다. 특별히 우리나라 조류 박제 및 표본제작 분야에서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는 이정우 기능자는 박제에 투신한 삶을 살며 자연사를 써왔다. 
조류의 기록이 된 새를 쫓으며 살아온 인생
    새가 좋아 호기심을 가지고 관찰하기를 즐겼던 십대 소년은 새들의 생태를 잘 아는 것으로 입소문이 났다. 부산에서 살면서 낙동강 하구에서 새를 관찰하는 것이 일상의 대부분이었던 소년은 학계에 소문이 날 정도로 열정이 대단했다. 새들의 움직임과 머무는 장소 등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은 물론 생명 자체에 대한 고민과 보존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할 정도로 관심의 폭이 넓어졌다. 그렇게 새와 남다른 인연을 맺은 소년이 바로 우리나라 조류 박제 및 표본제작 분야 개척자가 된 이정우 기능자다.



    “주변 환경이 제 삶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낙동강 하류는 새들의 움직임을 보고 생태를 관찰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죠. 새를 보면서 생태의 신비에 감동하며 생활하던 중 국제회의에 조류 발표 자료를 찾아 다니던 학자들과 당시 문화공보부 관계자들이 낙동강 변 두루미 촬영에 대해 문의를 해 온 게 제 인생의 항로를 바꿨습니다. 그즈음에 주남저수지 인근에 두루미가 내려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도움을 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학계 관계자들이 영국에서 진행한 세계조류학회에서 무사히 발표를 할 수 있었고 국제조류학회 한국위원장이었던 김헌규 교수와 인연이 닿아 박제사로서의 삶으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조류와 관련된 일을 시작한 이래 이정우 기능자가 세운 기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답사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이정우 기능자는 고등학교 재학 당시 여름방학 내내 거제도에서 텐트를 치고 생활하며 새를 관찰한 끝에 거제도에 팔색조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기도 했고, 홍도를 조사해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독도가 괭이갈매기를 비롯해 슴새, 바다쇠오리 등의 해양 조류와 물개, 바다사자, 바다표범 등 해양 포유류의 번식지라는 중요한 사실도 밝혀냈다. 뿐만 아니라 영광군 칠산도와 옹진군 신도에서 저어새 번식지를 찾아내 우리나라가 저어새 번식지라는 것도 확인하는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박제 역사의 살아 있는 표본
    이 무렵이 박제에 대해서도 깊이를 더해간 시기다. 많은 종류의 새들을 보존해 박물관에 전시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게 되면서 보존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무렵 박제 전문가인 원병호 교수와 한춘길 선생 등에게 박제에 대해서 배우게 됐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정우 기능자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책 한 권이 있다. 보수동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캐나다 자연사박물관에서 발행한 『CANANDA DEPARTMENT OF MINES AND RESOURCES』라는 책이 이정우 기능자가 방부처리나 각종 약품 정보, 재료의 배합법 등을 익히는데 큰 도움이 됐다. 원서로 된 책이라 사전을 찾아가며 일일이 번역까지 하는 열정을 쏟아내며 박제 기술을 터득했다.
    이처럼 이정우 기능자는 박제에 대한 체계화된 교육과정이 없던 시절에 박제를 익히느라 스스로 터득하고 개척한 기술이 많다. 선생만의 방법으로 작업을 하는데 박제의 가운데 몸체는 나무로 고정해서 사용한다. 근육 대신 솜으로 모양을 잡아서 형태를 갖추고 머리, 다리, 꼬리 등을 철사로 연결하면 나무가 중심을 잘 잡아주어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는 역할을 한다. 단순한 방법같지만 화학처리나 원형 그대로의 모양을 유지하는 것 등 조류 박제는 여간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어서 선생은 자신만의 기술로 섬세하게 작업을 진행한다.
 
左) 매목 매과의 조류인 새홀리기  中) 해안과 내륙 바위 절벽에 주로 서식하는 바다직박구리  
右)참새와 비슷하지만 참새보다 꼬리가 길고 흰색의 눈썹선과 꼬리 양쪽의 흰색 깃을 가진 멧새

    이미 실력면에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경지에 올랐지만 이정우 기능자는 60대의 늦은 나이에 문화재청에서 주관하는 국가자격증인 문화재수리기능자 박제 및 표본제작공 자격증 시험 시행 첫 해에 합격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는 천연기념물을 박제하기 위해서 반드시 취득해야 하는 자격증으로 더 폭넓은 작업을 하기 위해서 이정우 기능자 역시 꼭 필요한 것이었다.
    “죽은 새는 사라지기 마련인데 새로운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박제입니다. 그것이 바로 박제의 매력이죠. 특별히 솔새 등 작은 새에 대해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데 작은 새일수록 치밀하게 작업해야 완성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박제할 수 있는 사람이 적어 상대적으로 만족도나 성취감이 높아지는 작업입니다. 진짜 살아 있는 것처럼 생김새나 해부학적 형태가 맞아야 하고 동세(動勢)도 자연스러우면 좋습니다. 작업은 할수록 숙련되지만 국가에서 인증한 자격증을 취득해 더 많은 작업을 진행하고 연구도 하고 싶어 자격증을 땄습니다. 새로운 도전이었고 첫 해에 합격해 자부심을 얻기도 했습니다.”
    죽은 천연기념물은 천연기념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지만 박제해 표본을 만들어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면 영속성을 가지게 된다. 박제는 어떤 면에서 천연기념물의 생명을 이어가는 작업이라는 게 이정우 기능자의 설명이다. 그래서 그는 박제를 통해 천연기념물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했을 때 보람과 사명감을 느낀다고 한다.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에 일조하고파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박제가 잔인해 보일 수도 있다. 박제에 대한 고정관념 탓에 부자연스럽고 흉측하다는 인식이 존재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박제 기술이 발전해서 현대의 박제는 해부학적으로 정확하고 실제를 잘 고증하고 있으며, 희귀 멸종 동물의 종 보전과 연구에 활용되고, 동물 보호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교육적 가치도 가지는 등 긍정적인 면이 많다. 박제는 생물학적인 자료로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이다.
 
左) 이정우 선생이 독학한  『CANANDA DEPARTMENT OF MINES AND RESOURCES』       右)박제한 작품들은 이정우 선생의 역사이기도 하다

    아직은 박제에 대해서 편견도 여전하고 종사하는 사람도 많지 않지만 의미 있는 일이기에 멈추지 않고 작업을 이어갈 것이라는 이정우 기능자. 그는 후학양성에도 적극적이어서 학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제자도 다수 있다. 지속적인 박제 작업과 연구, 그리고 자료를 집대성하는 작업, 후학양성 등 다방면을 아우르며 부지런히 박제사로서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이정우 기능자가 앞으로 가장 중요한 목표로 여기는 것은 바로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에 힘을 보태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없어서 큰 아쉬움을 가지고 있는 이정우 기능자는 본인이 해야 할 역할이 많이 남아 있으니 더 분발해서 필요한 곳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없습니다. 국립자연사박물관이 건립되면 천연기념물과 관련해 중요한 자료이자 자산이 될 것입니다. 인류와 함께 가는 것이 바로 자연사박물관입니다. 박제사로서 제가 해야 할 남은 일은 바로 국립자연사박물관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일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으고 같은 목표를 향해 매진해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을 현실화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팔순이 넘은 나이지만 여전히 본인이 박제 분야에서 해야 할 몫을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는 이정우 기능자는 우리나라 박제사에 살아있는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