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오랜 역사만큼 깊은 맛, 신선의 곡차

2020-09-21

라이프가이드 라이프

농식품 종합 정보매거진 <농식품 소비공감>

농촌 풍류家
오랜 역사만큼 깊은 맛, 신선의 곡차
'문경 호산춘'

    경북 문경의 이름난 술, 호산춘(湖山春)은 방촌 황희 정승의 후손인 장수 황씨 종가를 중심으로 전승된 전통 가양주다. 그 깊은 맛과 역사성을 인정받아 경북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됐으며, ‘신선이 즐기는 곡차’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500년 세월을 굳건히 버티며 종가의 역사와 함께 전수되어온 문경 호산춘을 맛보았다.


 
장수 황씨 가문의 전통 가양주
    호산춘은 예로부터 전북 익산 지역의 술로 알려져 있다. 이 술이 경북 문경까지 전파된 것은 조선 시대 이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 당파 논쟁이 격렬하던 때, 당파 싸움에 참여하지 않은 장수 황씨 가문은 경북 지역 양반가의 미운털을 샀다고 한다. 경북 지역에서 혼인 상대를 구할 수 없게 된 황씨 가문은 충청, 전라 등 외지 양반가와 사돈을 맺었고, 여성들이 황씨 가문에 시집오면서 자연스럽게 그 지역 문화가 전수된 것으로 추측한다. 익산의 호산춘은 한문 표기 시 ‘술병 호(壺)’를 쓰지만, 문경 호산춘은 ‘호수 호(湖)’를 쓴다. 1990년 문경 호산춘이 경북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자 황희 정승의 22대손인 황규욱 전 대표가 익산의 호산춘과 구분하기 위해 한자를 바꾼 것이다. 현재 문경 호산춘은 장수 황씨 사정공파 23대손인 황수상 대표가 이어받아 명맥을 잇고 있다.
 
대문 앞에서 바라본 장수 황씨 고택 전경

    500년 역사가 깃든 호산춘을 즐기는 방법으로는 술 자체를 즐기는 방법과 역사의 장소를 찾아 직접 체험해보는 방법이 있다. 문경 호산춘 양조장 인근에는 장수 황씨 종택이 남아 있어 오래전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비록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장수 황씨 종택은 한옥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특징이 있어 중요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조상들은 집을 배와 같이 생각해 집 안에 우물을 파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곳에는 안채 바로 앞마당에 우물이 존재한다. 생활용수를 먼 곳에서 길어다 써야 했던 옛 시절에 일하는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해 우물을 집 안에 마련한 것으로 추측한다. 또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집 안 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다락 등 숨은 공간이 있어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피신처로 활용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장수 황씨 종택은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 대신 황수상 대표가 손수 관리하고 있다. 1991년 경북 문화재자료 제236호로 지정된 이곳은 연중무휴로 개방돼 자유롭게 오갈 수 있기는 하지만 일부 방문객의 몰지각한 행동으로 여기저기 손상되고 있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후대에까지 무사히 전수하려면 높은 시민 의식이 기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종택을 견학하며 호산춘과 황씨 가문의 역사에 대해 알아봤다면 이제는 호산춘 실물을 확인할 시간이다. 호산춘은 보통의 전통주와 달리 ‘술 주(酒)’ 대신 ‘봄 춘(春)’을 쓴다. 춘주(春酒)라는 명칭은 중국 당나라 때부터 유래한 것으로, 맛과 향이 뛰어난 귀한 술을 의미한다. 호산춘은 멥쌀, 찹쌀, 솔잎, 누룩, 물 다섯 가지 재료만으로 빚는다. 국내산 멥쌀과 찹쌀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솔잎도 직접 채취하며 물은 끓여서 식힌 것을 사용한다. 호산춘은 밑술과 덧술을 숙성시켜 만드는 이양주로, 모든 과정에 사람 손이 필요하다. 멥쌀을 갈아 찜통에 찌고 다 쪄지면 식혔다가 누룩과 물을 넣고 고루 비벼 항아리에 담는다. 이것이 1단 담금. 2단 담금은 멥쌀 대신 찹쌀을 사용한다는 것과 찹쌀에 솔잎을 같이 넣고 찐다는 차이가 있지만, 만드는 이의 정성이 들어간다는 점은 한결같다. 
    호산춘 견학을 신청하면 제조장 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데, 호산춘을 빚는 과정부터 원재료가 얼마나 들어가는지까지 상세히 배울 수 있다. 견학을 진행하는 황수상 대표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호산춘을 만드는 데 필요한 원재료의 양까지 기꺼이 일러주지만, 아무리 따라 해도 그 맛을 똑같이 재현하기는 힘들다. 만드는 과정에서 어느 것 하나라도 어긋나면 호산춘의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누룩은 호산춘에 필요한 미생물을 추가로 배양해 사용한다고 하니 보통 사람들이 명가의 맛을 내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 할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호산춘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는 오로지 사람의 힘만 들어갔다. 요즘은 최첨단 자동화 시대라지만, 호산춘 제조 과정에서 완전한 자동화는 찾아볼 수 없다.
    2014년 제조장을 준공한 덕분에 몇 가지 과정에 기계의 도움을 조금씩 받을 수 있게 됐지만 아직도 모든 과정에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상황이다. 기계가 대신해줄 수 없는 과정도 아직 많다. 황수상 대표는 지금도 술을 빚는 날이면 몇 날 며칠을 제조장에서 묵으며 호산춘 제조에 온 신경을 쏟는다.
    호산춘을 쉽게 만들 수 없는 이유, 이렇듯 여러 날 밤을 새우며 손수 빚어야 하는 이유는 화학 원료로는 절대 낼 수 없는 호산춘 고유의 맛과 특징 때문이다. 호산춘은 마시는 잔의 모양에 따라, 보관 온도에 따라 그 맛과 향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찻잔처럼 입구가 넓은 잔에 마실 때, 와인 잔처럼 모양이 둥글고 입구가 좁은 잔에 마실 때 향과 맛이 미세하게 다르고, 냉장 보관했을 때, 실온 보관했을 때 그 맛이 확연히 달라진다.
    특히 실온 보관한 호산춘의 경우 신맛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데, 이는 실온에 보관하는 동안 산화 작용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잔 모양이나 보관 온도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호산춘의 다양한 맛과 향을 즐기다 보면 전통주에 관한 관심이 부쩍 커진다.
    문경 호산춘은 장수 황씨 종택과 제조장을 견학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견학은 약 2시간 동안 진행되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므로 방문하기 최소 일주일 전에는 예약할 것을 추천한다. 견학 중간에는 호산춘을 시음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돼 있는데, 소규모 인원으로 방문하면 잔 모양과 보관 온도에 따라 달리 느껴지는 다양한 모습의 호산춘을 맛볼 수 있다.
    * 주소: 경북 문경시 산북면 운달로 7 / 문의: 054-552-7036 / 견학 참가비: 2만 2,000원(견학 후 1만 8,000원 상당 호산춘 1병 제공)
    국내 주류 시장에서 전통주의 시장 규모는 맥주, 소주, 와인에 비해 작은 편이다. 전통주는 다른 술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다양한 향과 맛을 지녔음에도 ‘명절에 마시는 술’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이 호산춘을 가장 많이 찾는 시기도 명절 전후라고. 호산춘을 맛본 이라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신선이 즐긴 술’로 이름날 정도로 뛰어난 맛과 향을 지닌 호산춘의 진가가 더욱 널리 알려져 해외 유명한 지역의 와인처럼 많은 사랑을 받기를 기대한다. (글 이선 / 사진 정원균 / 푸드스타일링 김가영)경북 문경의 이름난 술, 호산춘(湖山春)은 방촌 황희 정승의 후손인 장수 황씨 종가를 중심으로 전승된 전통 가양주다. 그 깊은 맛과 역사성을 인정받아 경북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됐으며, ‘신선이 즐기는 곡차’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500년 세월을 굳건히 버티며 종가의 역사와 함께 전수되어온 문경 호산춘을 맛보았다.
    호산춘은 예로부터 전북 익산 지역의 술로 알려져 있다. 이 술이 경북 문경까지 전파된 것은 조선 시대 이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시대 당파 논쟁이 격렬하던 때, 당파 싸움에 참여하지 않은 장수 황씨 가문은 경북 지역 양반가의 미운털을 샀다고 한다. 경북 지역에서 혼인 상대를 구할 수 없게 된 황씨 가문은 충청, 전라 등 외지 양반가와 사돈을 맺었고, 여성들이 황씨 가문에 시집오면서 자연스럽게 그 지역 문화가 전수된 것으로 추측한다. 익산의 호산춘은 한문 표기 시 ‘술병 호(壺)’를 쓰지만, 문경 호산춘은 ‘호수 호(湖)’를 쓴다. 1990년 문경 호산춘이 경북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자 황희 정승의 22대손인 황규욱 전 대표가 익산의 호산춘과 구분하기 위해 한자를 바꾼 것이다. 현재 문경 호산춘은 장수 황씨 사정공파 23대손인 황수상 대표가 이어받아 명맥을 잇고 있다.
    500년 역사가 깃든 호산춘을 즐기는 방법으로는 술 자체를 즐기는 방법과 역사의 장소를 찾아 직접 체험해보는 방법이 있다. 문경 호산춘 양조장 인근에는 장수 황씨 종택이 남아 있어 오래전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비록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장수 황씨 종택은 한옥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특징이 있어 중요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조상들은 집을 배와 같이 생각해 집 안에 우물을 파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곳에는 안채 바로 앞마당에 우물이 존재한다. 생활용수를 먼 곳에서 길어다 써야 했던 옛 시절에 일하는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해 우물을 집 안에 마련한 것으로 추측한다. 또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집 안 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다락 등 숨은 공간이 있어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피신처로 활용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장수 황씨 종택은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 대신 황수상 대표가 손수 관리하고 있다. 1991년 경북 문화재자료 제236호로 지정된 이곳은 연중무휴로 개방돼 자유롭게 오갈 수 있기는 하지만 일부 방문객의 몰지각한 행동으로 여기저기 손상되고 있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후대에까지 무사히 전수하려면 높은 시민 의식이 기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순수한 재료로 만들어 꾸밈없는 맛
    종택을 견학하며 호산춘과 황씨 가문의 역사에 대해 알아봤다면 이제는 호산춘 실물을 확인할 시간이다. 호산춘은 보통의 전통주와 달리 ‘술 주(酒)’ 대신 ‘봄 춘(春)’을 쓴다. 춘주(春酒)라는 명칭은 중국 당나라 때부터 유래한 것으로, 맛과 향이 뛰어난 귀한 술을 의미한다. 호산춘은 멥쌀, 찹쌀, 솔잎, 누룩, 물 다섯 가지 재료만으로 빚는다. 국내산 멥쌀과 찹쌀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솔잎도 직접 채취하며 물은 끓여서 식힌 것을 사용한다. 호산춘은 밑술과 덧술을 숙성시켜 만드는 이양주로, 모든 과정에 사람 손이 필요하다. 멥쌀을 갈아 찜통에 찌고 다 쪄지면 식혔다가 누룩과 물을 넣고 고루 비벼 항아리에 담는다. 이것이 1단 담금. 2단 담금은 멥쌀 대신 찹쌀을 사용한다는 것과 찹쌀에 솔잎을 같이 넣고 찐다는 차이가 있지만, 만드는 이의 정성이 들어간다는 점은 한결같다. 
    호산춘 견학을 신청하면 제조장 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데, 호산춘을 빚는 과정부터 원재료가 얼마나 들어가는지까지 상세히 배울 수 있다. 견학을 진행하는 황수상 대표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호산춘을 만드는 데 필요한 원재료의 양까지 기꺼이 일러주지만, 아무리 따라 해도 그 맛을 똑같이 재현하기는 힘들다. 만드는 과정에서 어느 것 하나라도 어긋나면 호산춘의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누룩은 호산춘에 필요한 미생물을 추가로 배양해 사용한다고 하니 보통 사람들이 명가의 맛을 내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 할 수 있다.

 
(左) 쌀을 찔 때 사용하는 대형 찜솥 뚜껑과 제조장 내부 모습     (右) 문경 호산춘
 
조건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예민한 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호산춘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는 오로지 사람의 힘만 들어갔다. 요즘은 최첨단 자동화 시대라지만, 호산춘 제조 과정에서 완전한 자동화는 찾아볼 수 없다.
    2014년 제조장을 준공한 덕분에 몇 가지 과정에 기계의 도움을 조금씩 받을 수 있게 됐지만 아직도 모든 과정에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상황이다. 기계가 대신해줄 수 없는 과정도 아직 많다. 황수상 대표는 지금도 술을 빚는 날이면 몇 날 며칠을 제조장에서 묵으며 호산춘 제조에 온 신경을 쏟는다.
    호산춘을 쉽게 만들 수 없는 이유, 이렇듯 여러 날 밤을 새우며 손수 빚어야 하는 이유는 화학 원료로는 절대 낼 수 없는 호산춘 고유의 맛과 특징 때문이다. 호산춘은 마시는 잔의 모양에 따라, 보관 온도에 따라 그 맛과 향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찻잔처럼 입구가 넓은 잔에 마실 때, 와인 잔처럼 모양이 둥글고 입구가 좁은 잔에 마실 때 향과 맛이 미세하게 다르고, 냉장 보관했을 때, 실온 보관했을 때 그 맛이 확연히 달라진다.
    특히 실온 보관한 호산춘의 경우 신맛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데, 이는 실온에 보관하는 동안 산화 작용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잔 모양이나 보관 온도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호산춘의 다양한 맛과 향을 즐기다 보면 전통주에 관한 관심이 부쩍 커진다.
    문경 호산춘은 장수 황씨 종택과 제조장을 견학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견학은 약 2시간 동안 진행되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므로 방문하기 최소 일주일 전에는 예약할 것을 추천한다. 견학 중간에는 호산춘을 시음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돼 있는데, 소규모 인원으로 방문하면 잔 모양과 보관 온도에 따라 달리 느껴지는 다양한 모습의 호산춘을 맛볼 수 있다.
    * 주소: 경북 문경시 산북면 운달로 7 / 문의: 054-552-7036 / 견학 참가비: 2만 2,000원(견학 후 1만 8,000원 상당 호산춘 1병 제공)
    국내 주류 시장에서 전통주의 시장 규모는 맥주, 소주, 와인에 비해 작은 편이다. 전통주는 다른 술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다양한 향과 맛을 지녔음에도 ‘명절에 마시는 술’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이 호산춘을 가장 많이 찾는 시기도 명절 전후라고. 호산춘을 맛본 이라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신선이 즐긴 술’로 이름날 정도로 뛰어난 맛과 향을 지닌 호산춘의 진가가 더욱 널리 알려져 해외 유명한 지역의 와인처럼 많은 사랑을 받기를 기대한다. (글 이선 / 사진 정원균 / 푸드스타일링 김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