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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鄕愁)

2020-07-01

문화 문화놀이터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콩트>
향수(鄕愁)
'글. 박순철'

    “잠깐 조용히 해주십시오. 이번에 입회한 김용천 씨를 소개하겠습니다.”
    어둠침침한 방안, 몇몇은 고스톱에 열중이고, 나머지 몇 사람은 이야기 장단을 늘어놓는 노인회관, 초례청에 들어선 새색시처럼 얌전하게 서 있던 용천 씨를 노인회장이 인사를 시킨다.
    “처음 뵙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고향이 어디 신가?.”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있던 검버섯이 덕지덕지 피어있는 노인이 던진 첫 말이다.
    “충북입니다. 그곳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며칠 전 만난 노인회장도 고향은 어디냐? 자녀는 몇이나 두었으며 지금은 무엇을 하느냐? 등 꼬치꼬치 캐묻고는 그것을 자신의 수첩에 적었었다. 고향이 왜 중요하며 자식이 무엇을 하는 게 왜 중요한지 용천 씨로서는 알 수 없었다. 
    용천 씨는 아들만 둘 두었는데 모두 결혼하여 제 앞가림은 하고 있다. 자식들 성화에 못 이겨 이곳 서울로 올라오고 보니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우중충한 시멘트 건물이요. 마음 놓고 걸어 다닐 곳도 마땅찮았다. 그런 아버지를 큰아들은 노인회관에 가면 또래 노인들이 많으니 그곳에 가서 시간을 보내라며 용돈도 넉넉하게 주고 있다.



    “신입회원, 부탁 좀 합시다.”라며 노인회장이 종이쪽지를 내민다. 달필로 휘갈겨 쓴 내용은 막걸리 세 병, 오징어포 1봉, 사이다 2병, 초코파이 1곽이었다. 심부름을 시키려면 당연히 돈을 줘야 하지만 노인회장은 어찌 된 일인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기에 바쁘다.
    용천 씨 나이 일흔이 넘었지만, 이곳 경로당에는 용천 씨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즐비하다. 어디든지 신입 인사라는 게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한 용천 씨는 아침에 며느리가 준 봉투를 생각하고는 엉거주춤 일어서서 마트로 향했다.
    “회장님 이거 어떻게 할까요?”
    노인회장은 용천 씨가 사 온 물건에는 관심도 없는 듯 바둑두는 사람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골똘히 수 싸움에 열중하는 것 같았다.
    “응, 그 뭣이냐? 냉장고에 넣어두시오. 먹고 싶은 사람 있으면 먹게.”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고스톱 치는 노인 뒤에 앉아있는 용천 씨를 유심히 살피던 검버섯 노인이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가까이 앉는다.
    “충북이 고향이라고 했나?. 좋은 곳에서 살았구먼. 서울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나 본데 지내보면 차차 괜찮아질 거여.”
    “네, 저는 처음이라서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그저 여러분들 보고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겠습니다.”
    “배운다? 하긴 늙어 죽을 때까지 배우는 게 인생이긴 하지만, 우리 그러지 말고 막걸리나 한잔하세.”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용천 씨는 조금 전 사다 넣어놓은 막걸리와 오징어포를 꺼내왔다. 마치 자신에게 할 일을 줘 기쁘단 듯이.
    “그래 농사는 얼마나 지으셨나? 나도 100석은 못해도 50석은 했었네.”
    막걸리가 몇 잔 들어가자 노인은 용천 씨를 완전 아랫사람 취급하듯 했다.
    “그래요. 광작이셨네요. 저는 논 열댓 마지기 부쳤어요.” 
    “그만하면 먹고 살만큼은 했네 그랴.”
    앞에 앉은 노인이 고향마을 어른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아니 돌아가신 큰 형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막걸리 석 잔을 마시더니 뒤로 물러나 앉는다.
    “저 어르신 한 잔 더 하시지요?”
    “어르신은 무신, 같이 늙어 감수로. 전에는 지고 가지는 못해도 마시고는 간다고 할 정도로 많이 마셨는데 이제는 아닐세.”
    아직 용천 씨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는데 노인은 그만 마시겠다니 난감했다. 그렇다고 신입 주제에 아무리 자신이 사 온 술이라고는 하나 혼자 꾸역꾸역 다 마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가 언제인가?”
    “오늘이 망종이니까 보름 정도 남았나 봅니다.”
    “하지 전 오 심기라고 했는데 지금은 하지 전에 모내기가 끝나지?”
    “예, 전에는 모심을 때가 가까워져 오면 누렇게 익은 보리가 바람에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는데 지금은 보리밭 보기가 무척 어려워요.”
    “그려. 봄에 보리밭을 매는 아낙네들 모습은 얼마나 보기 좋았고, 수건을 귀밑까지 내려쓰고 줄을 맞춰 고랑을 타고 앉은 모습은 참하기만 했었지….”
    노인은 자신이 농사지을 때의 모습이 눈에 선한 듯 한동안 눈을 지그시 감고 회상에 잠기는 듯했다.
    지금쯤 고향 마을엔 모심기가 한창일 것 같았다. 바쁠 때는 부지깽이도 한몫한다는 말이 있는데 얼마나 바쁠까? 마음 같아서는 고향으로 달려가 모심기하는 논에 들어가 일을 거들어주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하지만 용천 씨 고향마을도 이제는 기계화 영농으로 모든 일을 기계가 대신한다. 모심기 철에는 여남은 명씩 몰려다니며 모를 찌고 상일꾼이 써레로 논을 삶아놓으면 줄을 띄워가며 모를 심던 정겨운 풍경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그렇게 바쁘게 돌아가는 농촌과는 달리 이곳 경로당에서는 매일 화투나 놀이로 시간을 보내는 게 못마땅했다. 그렇다고 달리 할 일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평생을 농사일로 잔뼈가 굵은 용천 씨에게는 영 마뜩잖았다.
    용천 씨는 마을에서도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어렵게 농사지어 자식 둘 장가들여 외지로 내보내고 나니 어느새 백발이었다. 이제 농사일하는 것도 힘에 부쳤다. 그러자 자식들은 농사 그만 짓고 자신들이 사는 도시로 나오라고 성화였다. 차마 고향을 떠날 수 없어 몇 년을 미루고 미루다가 마지못해 큰아들이 사는 도시로 나오기는 했으나 영락없는 새장에 갇힌 비둘기 신세였다.
    아내는 지금이라도 시골로 돌아가 발바닥에 흙도 묻히며 들녘을 돌아다니고 싶다는 말을 노래처럼 한다. 고추와 고구마도 심고 또 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도 쐬이며 살고 싶지만, 자식들은 그런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했다. 아파트에 종일 갇혀있다가 어쩌다 바깥바람이라도 쐬일 겸 내려와서 조금 돌아다니다 보면 길을 잃을 때도 있었다. 
    “도시 생활 답답하지?”
    “네, 어떻게 잘 아시네요?”
    “나도 그랬어. 그런데 좀 지내다 보면 괜찮아.”
    “아, 네.”
    “내가 밭 한 뙈기 줄까?”
    “여기서도 농사를 지으세요?”
    “그럼, 우리 텃밭 구경 좀 해볼텐가?”
    노인은 용천 씨를 데리고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흙을 가득 채운 스티로폼 상자에 상추 아욱 고추 파 가지와 오이 등이 심겨 있었고 실한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용천 씨는 고향 마을에 돌아온 듯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어느새 쪼그리고 앉아 코를 큼큼거리며 흙냄새를 맡더니 실하게 올라오는 파 대궁을 손으로 조심조심 쓰다듬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