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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콩? 조리퐁? 과학은 철학의 부분집합

2020-06-03

교육행정 교육프로그램

충북교육소식지

배움이 활짝
커피콩? 조리퐁? 과학은 철학의 부분집합
'칠금중학교 교사 유진'


수업을 디자인하다!
    탐구수업을 위해 수업을 재구성하는 시간은 설렘과 무한 상상이 녹아드는 작업이다. 어린왕자들의 심장을 꿈틀거리게 할 오늘의 수업 소재를, 그들이 흥미 있어 할 재료를 찾아내어야 한다.
    수업 재구성은 수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게 시작이다. 



    “얘들아 너희 어떤 식물의 기공을 보고 싶니?”
    “현미경은 조작할 줄 아니?”
    “근데 말이야, 공변세포 프레파라트를 만들려면 잎 뒷면이 양파처럼 잘 벗겨져야하는데 그런 식물 본 적 있어?”  
    “아! 설악초예요!”
    “아니야, 바보! 달개비야.”
    “그래? 그럼 교과서 실험재료인 비비추잎은 선생님이 준비하고 각자 관찰하고 싶은 잎들을 준비해오자!”
    공변세포와 기공관찰의 수업재료가 정해지자 출퇴근길 내내 칠금동 일대 공원과 아파트 식물들을 훑어보며 옥잠화나 나리꽃잎들을 몰래 한 움큼씩 뜯어오는 꽃도둑이 되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행동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옆자리 선생님께서 전교생이 맘껏 관찰하고도 남을 엄청난 양의 닭의장풀을 새벽부터 당신 텃밭에서 채취해 가져오셨다. 고마운 마음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가운데 과학 실무사님께서는 옆집 화단에 비비추가 많아서 뜯어 왔다며 실험재료 구하는 수고를 덜어주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이렇게 좋은 분들과 동료로 지낼 수 있는 곳이 학교 말고 흔치는 않을 게다. A story based science(보려하는 자에게만 보이는 발견의 재미).
    “얘야 스스로 생각해보렴.”
    이런 선생님의 말씀은 친절하지만 무언가가 부족함을 느낀다.
    눈망울 초롱초롱한 그들 앞에 한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 무언가를 펼쳐주고, 오늘 이 시간 아이들이 찾아낼 보물이 무엇일까? 잔뜩 기대하며 우리 함께 눈부신 황금 카페트를 지어나간다.



    “선생님, 저… 이게 공변세포가 맞는 건가요?”
    “이 초록 알갱이는 뭔가요?”
    “선생님 이상해요. 전 아무것도 안 보여요!”
    실험시간 내내 아이들은 여기서 저기서 나를 불러댄다. 아이들이 도움을 청하는 그 순간만큼은 아이들과 나 사이에 신뢰가 충만한 느낌으로 채워진다. 우리는 자신이 발견한 신세계를 서로 확인하고 감동의 탄성을 내어 놓는다.
    “**야 너는 무슨 식물의 공변세포니? 엽록체가 너무나 생생하구나! 도대체 몇 배로 확대한 거야?”
    “선생님 기공이 정말 커피콩 같아요!”
    “아니야, 조리퐁 닮았어!”
    그래, 그래, 햇빛이 없을 때 채집한 잎은 기공이 닫혀 커피콩 같고, 햇빛을 많이 받은 잎은 기공이 열려 조리퐁 같단다. 오늘의 실험왕 상품은 그래서 조리퐁 세트야!
    현미경 렌즈 안에는 작지만 무한한 미시적 세상이 존재한다.
    백설이(가명)는 교실수업 시 화장만 하는 친구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 백설이가 선생님 눈에 젤 예뻐요! 그러니까 거울 대신 책 좀 보자! 애원하여도 매시간 백설이의 관심은 거울 속에만 있다. 그러던 백설이가 완벽한 전동기를 제작하여 A를 맞고 실험왕이 된 후로는 예쁜 두 눈이 더욱 빛을 발하며 실험에 몰두한다. 늘 수업시간 화장만 하던 아이는 실험시간만 되면 실험의 여왕으로 재탄생한다. ‘난 얼굴만 예쁜 게 아니야 실험도 잘해!’라는 듯 현미경을 정신없이 들여다보는 아이 옆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길동이(가명)는 이름난 장난꾸러기다. 늘 왁자지껄 시끄럽고 매시간 수업 방해만 하는 녀석이 실험실에만 오면 숨도 쉬지 않고 실험에 빠져든다. 오늘 기공관찰 실험왕은 예상대로 장난꾸러기 길동이가 되었다. 경품으로 커다란 조리퐁 세트를 거머쥔 그 얼굴은 세상을 다가진 듯 환희가 넘친다. 과학시간을 지겹게 만드는 것은 결국 수업자의 준 비 부족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깨닫게 해준다. 과학은 죄가 없고 위대했다. 사람을 새로이 변하게 만드니까.
    코로나19로 꼼짝 못하는 상황에서 즐거웠던 체험학습의 추억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어서 이 사태가 그치고 우리 아이들이 싱그러운 자연 속에서 마음껏 웃으며 공부할 날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