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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품으며 이어 온 흥과 멋 남원농악

20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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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품으며 이어 온 흥과 멋 남원농악
'국가무형문화재 제11-8호 남원농악 보유단체 남원농악보존회'


남원농악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 일원에서 전승되는 농악으로, 호남 좌도농악의 성격과 특징을 지닌다. 남원농악에는 들당산굿, 마당밟이, 판굿으로 구성된 마을굿 특징과 더불어 걸립굿 성격이 반되어 있다. 특히 판굿의 뒷굿인 도둑잽이와 재능기 구성이 특이하며, 호남 좌도농악에서만 사용하는 부들상모를 현재도 전승자들이 직접 제작하고 있다.
    남원농악보존회는 2019년 9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남원농악 보유단체다. 남원시민의 자랑이자 호남 좌도농악의 계보를 잇는 국가무형문화재 남원농악과의 만남은 전라북도 남원시에 위치한 남원농악전수교육관을 가득 채우는 흥겨운 풍악소리와 함께 시작됐다.


 
농악, 의식과 오락과 참여의 종합예술
    농악은 농촌사회에 기반을 둔 종합예술이다. 꽹과리, 징, 장고, 북 등 악기 연주에 역동적인 춤동작 그리고 풍자적 연기로 흥을 돋우는 연극적 요소까지 갖추고 있다.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복을 부르고 액을 쫓는 굿판을 벌이는가 하면, 농사로 연결된 마을 공동체의 번영을 기원하고 결속을 다지는 역할도 했다. 현재 남원농악보존회 농악패를 이끄는 상쇠이자 광복 전후 남원농악 상쇠였던 고(故) 류한준 선생의 아들인 류명철 선생은 농악이 의식이자 오락이자 참여의 장이었던 당시를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다.
    “예전에는 뭐 오락이랄 게 없었잖아요. 농사일 되게 하다 지치면 탁주 한사발에 노랫가락 곁들여 피로를 푸는 게 고작이었죠. 그러니 농악패가 찾아가면 무척 반겼어요. 온 동네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조용하던 마을이 들썩였죠. 서로 우리집으로 가자고 손을 잡아끌고, 없는 살림에도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 내며 집안 곳곳에서 굿을 해달라고 청했죠.”
    “그렇게 마을 입구부터 당산을 거쳐 집집마다 평안과 복락을 빌어주는 굿을 치고는 마을 광장에서 농악패의 갖은 기예를 신명나게 풀어낸 뒤 날당산굿까지 치고 나오자면 대여섯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시대가 바뀌고 농악패의 활동무대가 농촌마을의 골목골목, 농가 구석구석에서 공연장으로 옮겨가면서 온전한 완판 농악은 오래된 기억과 기록에만 남겨지고 있다.”
 
(左) 남원농악패 국립극장 공연 모습. 남원농악은 기교가 뛰어나 공연예술로서도 손색이 없다.     (右) 호남 좌도농악에서만 사용하는 부들상모. 남원농악보존회에서는 지금도 직접 제작한 부들 상모를 사용한다.
 
지역색, 문화적 다양성의 계승
    우리 농악은 지역별로 크게 영동, 충청, 영남 그리고 호남 좌도와 우도 농악으로 나뉜다. 서울에서 바라보는 기준으로 좌우를 구분했기 때문에 서부지역이 우도, 동부지역이 좌도다. 남원농악은 진안농악, 임실농악 등과 함께 호남 좌도농악에 속한다. 1966년 1월 진주삼천포농악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지난해 남원농악과 김천금릉빗내농악이 지정되면서 총 8개 지역 농악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지역마다 분명한 색깔이 있고, 그 다양성을 각각 계승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농악에서는 춤동작을 윗놀음, 가락을 밑놀음이라고 하는데요. 호남 좌도농악은 윗놀음이 화려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런 성격은 복색에서도 드러나서, 다른 지역에서는 상모와 고깔을 섞어 쓰지만 호남 좌도농악에서는 치배(농악패 구성원) 전원이 상모를 씁니다. 특히 우리 남원농악은 소고재비를 제외하고는 직접 만든 부들상모를 쓰죠.”
    상모라고 하면 흔히 긴 끈이 달린 채상모를 떠올리는데, 부들상모는 실을 꼬아 구슬 몇 개를 꿰고 끝에 하얀 깃털 뭉치를 매달아 만든다. 부들상모라는 이름은 철사처럼 뻣뻣한 재질로 연결하는 뻣상모와 비교해 ‘부드럽다’는 의미다. 적당히 지탱하는 힘이 있으면서도 유연하고, 깃털로 멋을 부린 부들상모는 채상모보다 만들기가 까다로운 편이다. 남원농악에서 부들상모를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이유다. 남원농악보존회 농악패의 부들상모는 염창수 수장고가 류명철 상쇠에게서 전수받아 제작하고 있다.

계승과 교류, 지키되 안주하지 않는
    남원농악은 호남 좌도농악 중에서 단연 화려하고 세련된 전문성과 마을 굿판 전체를 옛 전통 그대로 통달한 완판 능력을 자랑한다. 바꿔 말하면 토착농악으로서 마을굿이라는 전통적 기반을 충실히 계승하면서, 공연예술로서 전문성을 키워 연예농악단으로 성장해 왔다는 의미다. 남원농악보존회 회원들의 시연을 보면 관객을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호남 좌도농악의 특징을 살려 춤사위가 화려하고 역동적일 뿐 아니라 느린 가락과 빠른 가락을 오가며 잔가락으로 적절한 변주를 곁들인 밑놀음 또한 다채롭다.
 
(左) 남원농악은 윗놀음이 성한 호남 좌도농악의 특징을 이어받아 춤사위가 화려하고 역동적이다.
(右) 남원농악보존회 농악패를 이끄는 상쇠 류명철 선생

    “남원농악이 공연예술로서 세련미와 전문성을 갖춘 계기는 광복 이후 처음 열렸던 제1회 전국농악경연대회였어요. 그때 호남지역을 대표해 나간 호남 좌도 류한준패가 우승했는데, 30명의 치배 중 상쇠를 포함한 10명이 남원시 옹정리에서 나갔어요.”
    “전국대회 우승으로 전국에서 공연 요청이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가장 인원이 많은 남원농악이 공연의 주축이 되었다. 함께 활동하는 다른 지역 치배들의 장점까지 흡수한 남원농악패는 호남 좌도농악 중에서도 단연 다채롭고 화려한 공연을 갖추게 됐다.”
    높은 예술성과 전통적 마을굿 완판 능력 외에 남원농악보존회의 자랑거리가 하나 더 있다. 남원시민의 유난한 농악 사랑이다. 남원농악보존회의 정회원은 52명, 그중 남원농악전수교육관에 상주하는 회원은 10명뿐이지만 남원 전 지역에서 활동하는 농악인은 약 1,000명에 달한다. 김현진 사무국장은 농악이 남원의 마을 공동체를 지탱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남원 23개 읍면동에 다 농악단이 있고, 남원지역에서 활동하는 농악동아리도 2개가 있습니다. 정회원은 주 3회 수업을 통해 꾸준히 실력을 키우고, 읍면동 농악단도 실력 있는 정회원의 지도 아래 주 2회 연습을 하죠. 그리고 매년 남원시민의 날이면 그렇게 갈고닦은 실력을 겨루는 경연대회를 펼칩니다. 우리 지역의 큰 잔치죠.”

남원농악보존회, 책임과 바람을 품다
    지난해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은 남원농악보존회에 새로운 고민과 희망을 던져줬다. 남원농악의 전통을 온전히 계승해야 한다는 책임이 더 무거워졌고, 남원농악의 활동 무대를 한층 더 넓힐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겼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는 것은 국가를 대표할 책임과 자격을 동시에 갖게 됐다는 의미죠. 보유자가 없는 보유단체로 지정되면서 전판이-류한준-강태문-류명철로 이어 온 남원농악의 계보를 어떤 형태로 이어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역할을 확실히 해야 놓치는 부분 없이 국가무형문화재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을 테니까요.
    동시에 활동 무대를 전국으로, 전 세계로 넓히고 싶다는 바람과 희망도 있습니다. 남원농악만의 색깔을 보여 주면서 우리 농악의 다양성을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