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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바다 사람들이 품은 희망의 꽃씨

2019-12-06

문화 문화놀이터


동백꽃 필 무렵
100년 전 바다 사람들이 품은 희망의 꽃씨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 속에서도 한 떨기 꽃처럼 희망은 피어난다. 화제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주요 촬지이기도 한 포항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에는, 추운 겨울 홀로 피어 사랑받는 동백꽃처럼 여기 저기 흩날리는 희망이 널려 있다.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포스터
 
동백꽃 같은 구룡포
    동백의 꽃말은 ‘그대를 누구보다 사랑합니다’이다. 모든 꽃들이 다 지는 추운 겨울에 홀로 탐스럽게 피어나 사랑을 전하는 동백은 요즘 화제를 모으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주인공 이름인 동시에 작가가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동백이’(공효진 분)의 인생은 참 파란만장했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자신을 고아원에 버리고 떠났고, 뜨겁게 사랑하던 남자 ‘강종렬’(김지석 분)의 마음이 식은 것을 알고 그의 곁을 홀연히 떠나버렸다. 뱃속의 아이와 함께 정착한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직진밖에 모르는 순수한 남자 ‘황용식’(강하늘 분)을 만나게 되고 자신의 이름처럼 사랑을 꽃피운다. 여기에 동백이 곁을 집요하게 맴도는 연쇄 살인범 ‘까불이’와 쫓고 쫓기는 추격전까지 더해지면서 <동백꽃 필 무렵>은 2019년 최고의 인기드라마로 등극했다. 삶이 힘들게 하더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는 대신 사랑을 믿고야 마는 동백이의 한 떨기 꽃 같은 인생이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드라마 배경지 ‘옹산 마을’은 가상의 공간이지만 포항의 12경 중 한 곳으로 손꼽히는 포항시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일대에서 촬영되었다. ‘일본인 가옥거리’로 더 알려진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는 지난 2013년 12월 조성됐다. 일본풍 가옥을 보수하고 재정비해 일제강점기 당시 풍요로웠던 일본인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데, 이는 반대로 일본에게 착취당했던 우리 민족의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총 457m 길이의 거리를 걷다 보면 일본인들이 살던 적산가옥과 일본풍 찻집, 주점, 음식점 등이 즐비하다. 이 번화한 거리의 반대편에 당시 포항 주민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지 더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모여 살던 이곳에서 100년 후의 우리는 그 아픈 역사 속에서 마냥 스러질 수만은 없었던 강인한 한국인의 기개를 엿본다. 외로워도 슬퍼도 꿋꿋하게 사랑을 믿었던 드라마 속 동백이의 모습처럼.

 
(左) 구룡포는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한 바다’라는 전설처럼 빼어난 절경과 풍부한 어장을 갖고 있다.
(右)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의 사진 명소인 1900년대 우체통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의 거리
    겨울철 별미인 ‘과메기’의 고장 포항. 맛있는 바닷가 마을로만 알려진 이 고장엔 100여 년 전의 시간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공간이 있다. 2012년 구룡포 근대역사관 개관과 함께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로 다시 명명한 이곳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풍 가옥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어 ‘일본인 가옥거리’라 불렸다. 구룡포는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한 바다’라는 전설처럼 빼어난 절경과 풍부한 어장을 갖고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아픈 역사가 시작됐다. 100여 년 전, 일본의 많은 어부들이 포항의 구룡포에 입성했다. 대부분 가가와현(香川縣) 출신들로, 처음 한반도에 모습을 드러낸 건 1880년 즈음이라고. 당시 그쪽 출신 고깃배들 사이에선 좁은 어장 때문에 어부들의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세력이 약한 어부들이 더 넓은 어장을 찾아 먼 바다로 떠났고 상대적으로 풍족한 자원을 갖춘 한반도 포항에 정착하게 됐다. 이렇게 하나둘씩 모인 일본 어부들은 1932년 그 수가 300가구에 달할 정도로 상당한 규모다. 잡을 수 있는 물고기가 많다 보니 자연스레 돈이 벌렸을 거고, 이를 기반으로 일본인들은 선박 경과 선박 운반업, 통조림 가공공장 등으로 부를 축적해나갔다. 이 과정에서 자신들 입맛에 맞는 집을 지어 살기 시작했고 구룡포에 일본인 집단 거주지가 형성된 것이다. 돈을 벌고, 쓰는 일본인들 집 지역에는 음식점, 제과점, 술집, 백화점, 여관이 들어서며 번창했고 이 일대는 구룡포 최대의 번화가가 되기에 이른다. 약 500m의 거리에 80여 채 남아 있는 일본식 가옥들로 미뤄 당시 일본인들이 구룡포에서 얼마나 부흥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左) <여명의 눈동자> 촬영지.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는 1991년 방된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를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右) 구룡포 공원에서 내려다 본 구룡포 바다

    일본인들이 한반도에서 더없이 좋은 한때를 보낼 수 있었던 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시대적 배경 때문이다. 대한제국이 사라진 1910년 8월 이후 일본이 패망한 1945년 8월까지 착취와 수탈의 역사가 이어졌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구룡포는 최적의 어업기지로 떠올랐다. 도가와 야사브로라는 일본인 수산업자가 조선총독부를 설득해 구룡포에 축항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큰 배가 정박할 곳이 생기자 더 좋은 바다를 찾아 일본인들이 몰려왔고, 포항 주민들을 밀어내고 어업을 장악했다. 따라서 구룡포 일본인 가옥은 한국인의 눈물로 지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인들의 가장 찬란한 한때가 이곳 구룡포 주민들이 가장 아팠던 때와 맞물린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를 마음 편히 거닐 수만은 없을 것 같다.
100년 전 이야기가 살아 있는 공간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에는 일본인이 살던 가옥뿐 아니라 100년 전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건물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먼저 인근 유명 맛집들을 찾아보자. ‘호호면옥’ 간판이 붙은 건물은 그 당시 구룡포에서 으뜸가는 숙박시설인 ‘대등여관’이었다. 현재는 ‘냉면 맛집’으로 더 유명하다. 일본식 찻집으로 SNS에서 유명한 ‘후루사토’는 80년 전엔 인기 요리집 ‘일심정’이었다.
 
(左)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포스터      (右)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전경

    과거의 영화가 새겨진 건물을 따라 걷다 보면 왼편으로 구룡포 공원 계단이 나온다. 공원에 올라가면 구룡포 앞바다와 일본인 가옥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공원 뒤로는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심상소학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계단을 등 뒤에 두고 바다를 바라보면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포스터 속 바로 그 장면이 펼쳐진다. 그리고 가까이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정문도 보이는데, 그 근방에 구룡포 근대역사관이 위치해 있다.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이가 용식의 고백을 거절하면서 “나는 공유 같은 스타일이 좋다”고 말하던 장면을 촬한 곳도 근대역사관 앞이다. 구룡포 근대역사관은 1920년대 가가와현에서 온 하시모토 젠기치가 지은 집을 근대역사관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2층으로 된 일본식 목조가옥을 짓기 위해 하시모토는 직접 일본에서 건축자재를 들여올 정도로 정성을 쏟았다고 한다. 일본식 다다미와 정원이 있는, 당시 부유했던 일본인의 여유로운 구룡포살이를 엿볼 수 있다. 또, 포항 문화재단이 구룡포 문화특화마을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2018년 9월부터 운하고 있는 문화공간 ‘구룡포 문화마실’도 반갑다. 드라마 속에서 동백이가 열심히 두루치기를 팔며 운하는 술집 ‘까멜리아’가 바로 이곳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문화도시 포항의 문화 거점 공간으로 다양한 예술 교육 프로그램과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지역 작가들의 작품, 예술품을 판매하며 전시도 볼 수 있다. 
    일본풍 건축물이 줄지어 세워진 골목을 거닐다 보면 100여 년 전 국권을 빼앗기고 삶의 터전마저 빼앗겨버린 암울했던 그 시절이 환처럼 지나간다. 이곳을 ‘레트로풍 일본 거리’로 관광을 할 것이 아니라 그 시절 역사를 똑바로 바라보며 우리 민족이 그 시절을 어떻게 담대히 견뎌냈는지를 생각해보자.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는 매 걸음마다 100여 년 전의 그 시간 들을 떠올리며 걸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