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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부정

2019-10-17

문화


퓰리처상 수상 작
죽음의 부정
'인간 실존에 관한 답을 제시한 죽음학 분야의 고전'


“죽음의 공포는 인류의 역사에 얼마큼 큰 영향을 끼쳤을까?”  정신분석학을 통해 전개한 인간 본성에 관한 가장 심층적인 탐구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근원적 공포, 죽음.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을까. 베커의 주장에 따르면 '인생의 의미'라는 가치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이 만들어낸 자의식에 불과하다. 우리의 인생은 길어봤자 120년을 넘기지 못하며, 세상은 우리 없이도 잘 돌아갈 것이다.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셈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인간이 만들어낸 대부분의 가치가 죽음을 부정하려는 기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해도 그것이 죽음을 향한 고찰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존슨 박사가 말하길 죽음을 앞두면 마음이 놀랍도록 집중된다고 한다. 이 책의 주된 논지는 그건 약과라는 것이다. 죽음의 관념, 죽음의 공포는 인간이라는 동물을 무엇보다 사납게 뒤쫓는다. 죽음은 인간 활동의 주된 원동력이다. 이 활동의 목표는 대체로 죽음이라는 숙명을 피하고 (죽음이 인간의 최종 목적지임을 부정함으로써)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다. -본문 19쪽 〈저자 서문〉 중에서
    이 책은 크게 3부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서문에서는 인간의 본성과 영웅주의를, 1부(2장~6장)에서는 죽음의 공포를 분석한 정신분석학의 성과를, 2부(7~10장)에서는 신경증과 정신증 등 영웅주의의 실패가 야기한 정신분석학의 현재를, 3부(11장)에서는 영웅주의의 딜레마에 빠진 인간의 특질을 이야기한다. 책의 얼개만 살펴보아도 베커는 인간의 본성 중에서 영웅주의heroism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웅주의는 어려움이나 한계에 부딪힐 때 그것을 돌파하려는 인간의 존재론적, 영웅적 자질을 의미하는데 이 책에서는 죽음의 공포에 대항하기 위해 발현하는 영웅주의야말로 인간의 삶에 있어 핵심을 차지한다고 주장한다.



    영웅주의와 관련해 우리가 해야 하는 첫 번째 일은 그 이면을 고스란히 드러내어 무엇이 인간적 영웅성에 특유의 성격과 원동력을 부여하는지 밝히는 것이다. 여기서 현대사상의 위대한 재발견 중 하나를 직접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인간을 움직이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죽음의 공포라는 사실이다. 다윈 이후로 진화적 문제로서의 죽음의 문제가 수면 위에 떠올랐으며 많은 사상가들은 이것이 인간에게 주요한 심리적 문제임을 즉시 간파했다. -본문 45쪽 〈죽음의 공포〉 중에서
    이 방대한 저작의 성과와 베커의 철학은 미국의 철학자 샘 킨이 쓴 서문에 잘 정리되어 있다. 이 책의 서문은 샘 킨이 말기 대장암으로 투병 중이었던 베커의 병실을 찾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쓰였다. 샘 킨은 베커의 철학을 네 가닥의 끈으로 엮은 매듭에 빗대어 설명했는데, 이를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본문 12~15쪽 〈샘 킨의 서문〉 정리
    첫 번째 가닥: 세상은 끔찍하다.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자연에 대한 베커의 해석은 월트 디즈니와 공통점이 거의 없다. 어머니 자연은 이빨과 발톱을 피로 물들인 채 자신의 피조물을 찢어발기는 잔혹한 암캐다. 베커 말마따나 우리가 살아가는 창조 세계에서 유기체의 일상적 활동은 “온갖 종류의 이빨로 물어뜯고, 식물의 줄기와 동물의 살과 뼈를 어금니로 짓이기고, 기뻐하며 육질을 게걸스럽게 식도로 내려보내고, 먹이의 정수를 자신의 체제에 통합하고, 그러고 나서 악취와 가스를 내뿜으며 잔여물을 배설하”는 것이다.  
    두 번째 가닥: 인간 행동의 기본적 동기는 자신의 불안을 다스리고 죽음의 공포를 부정하려는 생물학적 욕구다. 인간이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 죽을 운명인 세상에서 무력하고 버려진 신세이기 때문이다. “무에서 생겨나 이름, 자의식, 깊은 내적 감정, 삶과 자기표현에 대한 고통스러운 내적 열망. 이 모든 것을 가지고도 죽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공포의 근원이다.” 베커는 죽음에 대한 성찰이 두려움과 공포와 존재론적 불안을 동반할 수밖에 없음을 일깨운다.  
    세 번째 가닥: 죽음의 공포가 어찌나 압도적인지 우리는 이 공포를 무의식에 묻어두려 한다. ‘성격의 필수적 거짓’은 무력함의 고통스러운 자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첫 번째 방어선이다. 모든 아이는 성인에게서 힘을 빌리며, 신과 같은 존재의 특징을 내면화함으로써 성격을 창조한다. 우리가 전능한 존재라면 우리는 죽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방어선은 영웅 체계를 만들어냄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영속적 가치가 있는 일에 동참해 죽음을 초월한다고 믿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제국을 정복하고 신전을 건설하고 책을 쓰고 가족을 이루고 부를 쌓고 발전과 번영에 이바지하고 정보사회와 전 세계적 자유시장을 창조하는 일에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가짜 불멸을 얻는다. 인간의 삶에서 주된 임무는 영웅이 되어 죽음을 초월하는 것이기에 모든 문화는 은밀한 종교성이 깃든 교묘한 상징체계를 구성원에게 제공해야 한다. 이는 문화 간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본질적으로 불멸 기획 사이의 전투, 즉 성전聖戰임을 뜻한다.  
    네 번째 가닥: 악을 섬멸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우리의 영웅 기획은 더 많은 악을 세상에 불러들이는 역설적 결과를 낳는다. 인간의 갈등은 나의 신과 너의 신이 대적하고 나의 불멸 기획과 너의 불멸 기획이 대적하는 생사의 투쟁이다. 인간에게서 비롯한 악의 뿌리는 인간의 동물적 본성이나 영역을 지키려는 공격성 또는 타고난 이기심이 아니라 자존감을 느끼고 필멸성을 부정하고 영웅적 자아상을 얻으려는 욕구다. 최고를 향한 욕망이야말로 최악을 낳는 원인이다.  
    샘 킨은 이 책을 사회심리학 분야의 항구적 기여로 평가했다. 그는 베커 덕에 기업과 국가를 움직이는 무의식적 동기가 겉으로 포장된 목표와 거의 무관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가 분석한 베커의 주장에 따르면 비즈니스 세계나 국가 간의 전쟁에서 타인을 배제하고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는 행위는 경제적 필요나 정치적 현실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영속적 가치가 있는 것을 얻었다는 확신을 갈구하는 인간의 심리와 더 깊은 관계가 있다. 
    어쩌면 베커는 샘 킨의 말처럼 ‘악의 학문’을 창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인류가 어떻게 전쟁, 인종 청소, 집단살해 같은 불필요한 악을 만들어내는지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유사 이래 인류가 열등감과 자기혐오, 죄책감, 적대감 등에 대처한 방법은 이를 적에게 투사하는 것이었다. 베커는 전쟁이 세상을 정화하는 사회적 제의이며 그 제의에서 적은 더럽고 위험한 무신론자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전쟁에서는 피를 많이 흘릴수록 좋다. 사상자가 많을수록 거룩한 대의와 운명, 신의 계획을 위한 희생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스피노자의 카우사 수이causa sui(자기원인: 스스로 의미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 개념을 비롯해 키르케고르의 정신분석학, 프로이트의 심리학, 그리고 베커가 가장 사랑하는 현대 심리학의 선구자 오토 랑크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철학과 심리학을 망라한다. 그는 자신의 저작을 위해 이미 전개된 정신분석학의 학문적 성과에 큰 빚을 졌음을 여러 번 밝혔다. 하지만 이 책 《죽음의 부정》을 바탕으로 전개된 후학의 도서와 연구 또한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필멸하는 존재, 인간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를 추한 몰골로 살게 하는 것은 위장된 공포이지 자연적인 동물적 본성이 아니다. 이 말은 악 자체를 비판적 분석에, 또한 생각건대 이성의 지배에 회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본문 18쪽 〈서문〉 중에서
    베커의 말처럼 ‘추한 몰골’로 살지 않고, 죽음의 공포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베커는 개인의 무의식 안에 잠재한 ‘전쟁의 도덕적 등가물’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학에 따르면 사회는 언제나 수동적 신민, 강력한 지도자, (우리가 죄책감과 자기증오를 투사하는) 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증오’의 대상을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증오의 대상을 인간 희생양이 아닌 빈곤, 질병, 억압, 자연재해 같은 비인격체로 돌리자는 것이다. 베커는 인간이 가진 근원적 공포인 죽음의 의미를 ‘나’ 이상의 화제로 전개하며 “증오는 불가피하지만, 지성과 지식을 접목해 파괴적 에너지를 창조적 행위로 돌릴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뚜렷하게 구분되는 동시에 죽으면 어쩔 수 없이 썩어 자연으로 사라져버린다는 이원적인 딜레마를 안고 있다. 이것이 베커가 말하는 인간의 무시무시한 딜레마다. 결국 인간은 이러한 이원적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누군가 이 책이 ‘인간이 가진 한계(=죽음, 필멸성)를 무너뜨릴 수 있는’ 기획을 가지고 있냐 묻는다면, 종교나 과학과 같은 학문적 성취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베커의 결론이다. 다만 그는 소크라테스처럼 우리에게 죽음을 연습할 것을 당부한다. 죽음에 대한 자각을 기르면 미망에서 깨어나 의식적으로 공포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커는 자신이 공포와 딜레마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고, 자신의 무능력과 연약함을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보통의 인간과 실존적 영웅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말한다. 영웅적 개인은 죽음을 자발적으로 의식하며 살아감으로써 절망을 선택할 수도 있고 우주적인 도약을 할 수도 있다.
    이 책은 죽음의 공포에 관한 정직한 인식, 자아를 넘어 근원적 타자를 향한 인간의 내면을 심층적으로 그린다. 그리고 어떤 조건에서도 자신을 철회하지 않고 삶을 고민해야 하는 근거를 제시한다. 《죽음의 부정》은 ‘인간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에 관한 가장 눈부시고도 열정적인 대답이다.